[주말여행] 나미나라공화국 '남이섬' 두 번째 이야기
처음 “섬!”이라고 말한 이는
분명 섬의 마음을 알았던 것이다.
새가 알을 낳고 바람이 낮잠 자는
맑은 날, “섬!”하고 부른 이는
바다에 떠 있는 고요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그리움을 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던 것이다.
너무도 착해서 슬픈 짐승이랄까.
“섬!”
-서상영 「시인의 섬 기행」중에서
여행은 우연의 연속이다. 작년 겨울, 우연히 찾은 남이섬은 인연을 만들었고 그 인연은 필연이 되어 또 다시 남이섬으로 발길을 닿게 했다. 형형색색 꽃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연초록 잎사귀로 물드는 초여름. 다시 찾은 남이섬의 민낯은 청초한 20대의 풋풋함이었다. 어느 때처럼 사람들이 북적이는 섬 초입부에는 녹음이 짙게 드리웠다. 겨우내 움츠러들어있던 청솔모와 오리, 타조들은 생기를 되찾은 듯 남이섬 곳곳에서 기지개를 켰다. 북한강 사이 반달처럼 떠있는 남이섬. 어린 잎사귀를 단 나무들과 푸른 하늘이 싱그럽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애초에 남이섬은 섬이 아닌 버려진 모래밭이었다. 청평댐이 완공되면서 생긴 공터에 나무를 하나하나 심어 생명을 불어넣은 강우현 대표의 노력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던 불모지에 불과했다. 한때 잘나가는 디자이너였던 그는 “남이섬은 제 스케치북입니다”라고 말하며 섬에 자신의 상상력을 스케치 했다. 쓰다 남은 목재도 굴러다니는 이파리도 그의 손을 거치면 디자인 소품이 됐다. 버려질 뻔한 쓰레기는 작품이 됐고 그의 손에서 탄생한 자원은 곧 자연이 됐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이 섬의 특징이라고 생각했죠” 자연을 자연답게,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남이섬의 질서는 이 말에서 탄생한 게 아닐까. 섬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조형물과 건물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자연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익어가는 열매 같은 남이섬.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처음 남이섬을 찾았을 때 초입부 중앙잣나무길의 웅장함을 기억한다. 정돈된 나무의 간격들. 따뜻한 햇살에 경계가 무너져서 일까. 하얀 풍선 같은 등이 일렬로 늘어져 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겨우내 얼어붙어있던 연못의 분수가 부서지듯 잔잔히 번지고 있었다. 섬의 중앙부 밥플렉스 광장은 평화로웠다. 자연스레 숲길의 일부가 된 듯한 벤치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카메라에 추억을 담기 바빴다. 자전거에 올라탄 연인들은 여유를 만끽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숲길 사이로 펼쳐진 잔디밭은 여름을 머금고 더욱 넓어보였다. 허기진 배를 달래러 들어간 ‘한식당 남문’에서도 자연을 맛볼 수 있었다. 연잎으로 싼 오곡밥과 싱싱한 채소들. 어느 곳에서, 어떻게 들여다보아도 남이섬은 자연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너도 그렇다=하루 온종일 섬을 걸어도 못보고 지나치는 곳이 있을까 아쉽기만 하다. 섬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지만 자세히, 오래 바라다보면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에서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의 잎맥이 남이섬 전체를 감싸고 있는 동맥 같다. 어쩌면 남이섬 곳곳에서 살고 있는 청솔모나 오리, 타조, 잠시 머물다 날아가는 새들까지도 이 생명의 기운을 받고 더 활기찬 건지도 모르겠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남이섬은 오늘도 어린이날 입니다’라는 섬 곳곳에 있는 현수막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빡빡한 일상에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 곳곳에 유난히 많은 표지판을 뒤로 하고 그만, 섬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도, 좋겠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작은 소제목(▲)은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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