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번 언제 온대유?”
18일 오후 중구 석교동주민센터 버스정류장. 양손 가득 짐을 든 할머니가 정류장 의자에 앉아있는 다른 할머니에게 물었다. 부쩍 더워진 날씨에 손 부채질을 하던 할머니가 버스도착 안내기를 가리켰다.
“여기 나와있자나유, 13분 남았네.”
두 할머니는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곤 “요즘 날씨 참 더워졌다”며 얼굴 주변을 부채질했다. 5분여 동안 조용하던 버스정류장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엄마 버스 언제 오는 거야?”
엄마와 버스를 기다리던 한 남자아이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는 “곧 온다”며 보채는 아이를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는 떼를 쓰며 정류장 주변을 뛰어다니다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주민 윤모(40)씨의 말이다. “아이들은 버스를 기다리다 보채는 경우가 많아요. 동화책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버스를 기다리다 아이는 지루함에, 엄마는 떼쓰는 아이에, 할머니는 더위에 지쳤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버스정류장에 선풍기라도, 동화책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이 아쉬움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려본 시민이라면 한번쯤 느껴본 감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드는 바람, “버스정류장에 000이 있다면?”이다.
이런 막연한 생각이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석교동 알짬마을도서관과 대전충남녹색연합, 대전시 등이 함께 석교동주민센터 정류장을 ‘친환경버스정류장’으로 만들기로 하면서다.
석교동 주민들이 장소 선정에서부터 디자인, 기능, 운영까지 정류장 설치의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 주민들은 지난달 22~28일 친환경버스정류장으로 꾸밀 후보지 2곳을 놓고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석교동주민센터 정류장이 1158표로, 518표를 받은 석교동치안센터 정류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이후 지난 5일 석교초등학교에선 마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내가 상상하는 버스정류장 도서관’ 그림대회도 열었다. 정류장 디자인과 기능에 관련한 아이들의 톡톡 튀는 생각을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책이 있는 도서관 정류장에서부터 기존 사각형이 아닌 아치형 정류장, 동전교환기나 TV가 설치된 정류장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원했던 ‘000’은 ‘화장실’이었다.
알짬도서관과 대전충남녹색연합은 석교동 골목을 돌며 골목길 워크숍을 열고 설문을 진행해 어른들의 생각도 조사할 계획이다. 현재 모금도 진행 중이다.
대전충남녹색연합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는 주민들이 모든 과정에 참여해 동네 정류장을 바꾸는 만큼 의미가 깊다”며 “석교동주민센터 정류장을 주민들과 마을에 꼭 필요한 기능을 넣은 동네 사랑방 같은 정류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버스정류장의 놀라운 변신은 전국 곳곳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수원과 용인에는 임산부와 노인 이용자들이 많은 정류장에 온열·발열의자가 설치돼 있다.
울산에는 지역 특색을 살려 선박, 갈매기, 터널 모양의 정류장이, 제주에는 메모도 남길 수 있고, 오목도 둘 수 있는 사랑방 정류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전시 관계자는 “석교동주민센터 버스정류장을 새로운 정류장으로 만드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향후 정류장이 잘 운영되고, 시민들로부터 호응도 좋다면 다른 동네 정류장도 같은 형식으로 바꾸는 것을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 대전충남녹색연합 제공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