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 '노오력'의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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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춘추] '노오력'의 성적표

  • 승인 2016-04-20 14:05
  • 신문게재 2016-04-21 22면
  • 정일규 한남대 교수정일규 한남대 교수
▲ 정일규 한남대 교수
▲ 정일규 한남대 교수
'노오력'이란 말에는 사회 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윤리문제로 돌리는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세대의 반감과 풍자가 담겨있다. 어쩌면 강의 중 학생들 앞에서나, 연구실에서 학생을 개별적으로 만나 상담할 때에 공부해야할 이유를 강변하는 나에게서 학생들은 또 한 번의 '노오력'을 느끼며 좌절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력에 '오'자 한 자를 더 넣어 자신의 모든 열정과 가용에너지를 다 쏟아 부어도 답이 없는 '노답사회'를 표현한 청년들의 좌절감이 전해진다. 이제 헬조선이나 N포세대라는 말은 이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더욱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용어가 담고 있는 사회ㆍ경제적 문제를 풀어내야할 기성세대 또는 기득권계층의 의식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고작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용어를 사용하는 '요즘 젊은 것들'의 나약함이나 비뚤어짐을 문제 삼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배고픔과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노력은 하지 않고 자신의 불만을 사회에 돌리는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과연 헬조선이라는 말을 자기가 태어난 나라마저 부정하는 극도의 자기비하의 의미로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말에서 우리는 다가올 시대의 주역인 젊은 세대의 신음소리를 듣고, 그 아픔을 공감할 수 없는 것일까? 변화를 일으킬 실제적인 힘을 가진 기성세대가 다음세대의 신음을 배부른 자의 불만으로 해석하는 한 문제의 해결과는 멀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이 땅의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공무원과 대기업에 취업하는 한 가지 목표에 매달려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그 중 소수 '노오력'에 성공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비정규직 또는 알바수준의 일자리에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너무 큰 소득격차와 직업의 불안정성을 감수하여야 한다. 이 상황을 초래한 장본인은 바로 기성세대이다. 이러한 문제를 교육 및 사회ㆍ경제전반의 개혁을 통해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을 탓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대다수가 무한경쟁에 내몰려서 채용시험이라는 매우 획일적인 과정을 통해서 선발된 소수만이 경쟁의 사다리로 올라갈 수 있고, 그러한 경쟁조차도 다분히 정의롭지 못한 방법이 용인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한 접근법은 무엇보다 정치지도자의 철학과 가치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권의 대처는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더 큰 '노오력'을 강조하는 것 말고는 없어 보인다.

4ㆍ13총선은 이에 대한 국민의 지혜로운 심판이었다. 여당의 대변인은 “4월 13일은 국민들 뜻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뼛속 깊이 새기게 한 날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새누리당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날”이라고 하였다. 먼저 오만과 불통의 이미지는 야당의 정치공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왔음을 깨달아야 한다.

'헬조선'의 현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배태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세계에서 유래 없이 단기간에 고도의 압축성장을 가능하게 하였던 신자유주의적 성장위주, 경쟁위주 정책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그 그림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경제, 사회, 정치 모든 분야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생활과 의식 속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2년 전 세월호의 비극은 그러한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일어났지만, 한편으로는 국가개조의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전기가 될 수도 있었다. 즉 세월호를 계기로 이 사회의 병폐를 드러내고 변화의 필요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공감과 합의를 이루어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것을 동력삼아 변화를 주도해 나가는 대신 방어적 태도로 일관하였고,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과서의 국정화를 밀어붙이면서 국론은 더욱 분열되었다.

이제 20대 총선에서 국민의 뜻이 드러났다. 청년이 아닌 정부와 여당이 노오력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국민은 대통령이 더 낮은 자리로 나와 소통하길 원한다. 그러할 때 2년 후에는 '노오력'이 아니라 국민이 주는 진정한 '노력'의 성적표가 주어질 것이다.

정일규 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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