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미 유성도서관 사서 |
▲ '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톰 미첼, 21세기북스, 2016 |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도전을 꿈꾸던 20대 영국청년은 남미 아르헨티나의 기숙학교 교사로 인생 첫 모험을 시작한다. 모험은 영국을 떠나 아르헨티나에 자리를 잡고 우루과이로 여행을 떠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평생의 친구이자 여행동반자인 펭귄을 만난 것은 겨울휴가로 방문한 우루과이의 푼타델에스테 해변이었다. 여행지에서의 첫만남이라는 제법 로맨틱하고 근사한 설정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가한 휴양지를 산책하다 만난 것은 역겨운 기름과 타르에 숨통이 막힌 채 기름 범벅이 되어 해변을 뒤덮은 펭귄사체들이었다. 1900년대 중후반,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 전 유조선 관련 규제들이 부족한 때에 유조선들이 기름을 바다에 그냥 흘려 버린 듯했다. 바다에 버려진 검은 기름에 수천마리의 펭귄이 바다 속을 여행하다 대참사를 맞은 것이다. 인간의 잘못이 수천마리의 펭귄에게 화를 입혔다는 불편한 마음을 가진 채 돌아서려던 순간 검은 카펫에 움직임이 느껴진다. 아직 살아있는 펭귄이 한 마리 있는 것이다. 펭귄 '후안 살바도르'와의 첫 만남이었다.
후안은 남아메리카 남쪽 해안에 자리잡은 줄무늬펭귄 속 펭귄 종 마젤란펭귄이다. 마젤란펭귄에 대한 작가의 설명을 빌리자면 '키는 약 45~60터 정도이며, 몸무게는 대략 3~6㎏ 정도다. 부리는 검고 얼굴은 희며 몸통 앞쪽은 흰색인데…' 작가의 설명을 읽자 후안의 실물이 궁금하다. 인터넷에 후안 살바도르를 검색하려다가 마젤란펭귄을 검색한다. 역시 귀엽다. 하지만 후안의 매력은 외모가 다가 아니다. 후안은 말을 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어 마음을 터놓고 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후안은 무거운 입을 가졌다. 이는 후안이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후안의 눈동자에는 뛰어난 달변가가 갖추어야 할 명쾌한 의사전달 법이 담겨있었다. 후안을 만나기 위해 나의 테라스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후안에게 시시콜콜한 날씨 얘기부터 가슴 속 비밀이야기까지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았다. 후안은 누구보다도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줬고, 대화에 진지하게 임했으며, 고갯짓과 눈빛으로 성실하게 대답해줬다. 럭비팀의 승리의 마스코트가 되어주기도 했고 럭비전술의 팁을 주기도 했으며 소심한 소년을 멋진 수영선수로 성장하게 도와주었다.
이 책은 단순히 반려동물과의 일상이야기만은 아니다. 저자의 남미 여행에세이가 되었다가 1970년대 정권의 부패와 군사정권의 권력 장악 등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되었다가 환경과 동물보호에 관한 책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마젤란 펭귄과 철부지 교사의 우연한 동거라는 부제를 달아서 뭔가 코미디 영화 같은 에피소드를 기대했다면 약간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후안과 함께 우루과이에서 아르헨티나로 국경을 넘고 기숙학교의 테라스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당신에게도 후안은 분명 특별한 펭귄이 되어있을 것이다.
조성미 유성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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