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78) 할머니는 셋째아들 B(44)씨의 정서적·신체적 학대에 “더 이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알코올 중독, 우울증, 감정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셋째아들의 폭행과 폭언은 10년 전부터 지속됐지만 A 할머니는 신고하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첫째아들 C(51)씨의 신고로 A 할머니는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인계됐지만 셋째아들의 정신과치료는 원치 않았다. 그러던 중 셋째아들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잠깐 집을 찾은 A 할머니에게 또다시 폭력을 가했다. A 할머니는 상담에서 “이제 그만 쉬고 싶다”고 고백했다.
D(86) 할아버지는 계속되는 둘째아들 E(48)씨의 학대를 참지 못해 본인이 직접 신고했다. 알코올 중독,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던 둘째아들은 술을 먹기 위해 아버지의 수급비를 빼앗았다.
그는 술을 마신 후 D 할아버지에게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선풍기를 바닥에 내리치는 등 폭력행사를 하다 최근엔 칼로 위협까지 했다. D할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위협적인 행동에 두려움을 느껴 결국 도움을 요청했다.
효의고장 대전지역 노인들이 위기에 빠져있다.
이들은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고독 속에 빠지고 있다. 여러 이유로 자식에게 욕 듣고, 매 맞는 것은 기본이요, 이제는 자신의 삶까지 버리는 자기방임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대전노인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노인 학대 신고는 모두 98건. 전년(84건)보다 14건이나 늘었다. 노인 학대가 늘어나는 것은 젊은 세대는 부모에 대한 경제적 의존이 심화되는 반면 부모들의 자식부양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면서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이 깊어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고를 월별로 분석한 결과 추석이 있던 9월이 23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3월·6월(14건), 11월(10건), 2월(8건) 순이었다. 구별로는 중구가 47건으로 가장 많았고, 동구(22건), 서구(18건), 유성구(5건), 대덕구(4건)가 뒤를 이었다.
삶의 끝자락에서 학대를 당하는 노인들이 주변에 많지만 이를 막기 위한 법적인 제도와 장치는 미비한 실정이다.
현재 존속폭행은 ‘반의사불벌죄’에 따라 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방법이 없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역할은 전문상담과 예방교육 등으로만 이뤄져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존속폭행을 가중 처벌하고 노인전문기관이 사전에 학대를 방지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대다수 노인들이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에 신고를 꺼려 신고의무화 등 제도적인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전노인보호전문기관 이종순 관장은 “학대받는 어르신을 만나 그들의 지나간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은 아프지만 실제적으로 힘이 되어 드리기에는 역부족인 현실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며 “대우받지 못하는 노년을 살아가는 노인들을 위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며, 이들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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