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시각장애 체험해보니...두려움 그 자체
“앞으로 가도 되나요?”
5일 오후 2시 목원대학교 정문 앞. 검은 안대를 쓴 기자는 발을 떼지 못했다. 몇 초 전까지 눈에 들어오던 세상의 밝은 빛은 사라지고 암흑만이 가득했다.
첫 걸음을 내딛기는 커녕 도우미의 안내를 간절히 기다렸다. ‘어둠 속에 서있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두려움에 휩싸였다. 두려움은 의지와 생각을 순식간에 지배했다.
용기를 내봤지만 ‘다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이내 포기했다. 마음속으로 용기와 포기를 반복하기를 수차례. 구세주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앞으로 가세요.”
기자가 시각장애인으로서 첫 걸음을 내딛기까지의 과정이다. 실제로는 5~6초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느껴지는 시간은 훨씬 길었다.
이날 목원대 사회복지학과는 ‘제21회 장애체험의 장’ 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비장애인과의 사회통합을 위해 매년 열리고 있다.
학생들은 9일까지 직접 여러 장애를 체험하고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애이해교육을 진행하는 등 장애인 인식개선 캠페인을 벌인다.
5일은 학생들이 안대를 하고 흰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서부터 유성온천역까지 장애체험을 하는 날. 기자도 학생들 사이에 섞여 시각장애인 체험을 해봤다.
‘별거 있겠어’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체험은 안대를 끼자마자 생존으로 바뀌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다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막대기로 밖에 보이지 않던 ‘흰 지팡이’는 기자의 생명을 지켜주는 도구로 변했다. 발에 맞춰 지팡이를 좌우로 흔들며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팡이가 바닥에 ‘툭’하고 걸리면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장애물이 있는지 발을 조심스레 내딛어 여러 번 짚은 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 소리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 의지할 것이라곤 소리뿐이었다. 이런 노력에도 아찔한 순간은 여러 번 찾아왔다.
인도에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오토바이를 피하기 위해 급히 멈춰서야 했다. 도우미의 안내가 없었다면 어찌될 지 모르는 일이었다.
갑자기 기자 앞을 지나가는 행인과도 부딪힐 뻔했다. 횡단보도 앞 볼라드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해 여지없이 부딪혔고 거리에 있는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히기도 했다.
학생들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이 된 이들은 “앞이 안보여서 많이 어지러워요”, “자꾸 부딪히고 그래서 불안한데 속까지 안좋아요”, “보조하는 사람이 없으면 못 다닐 것 같아요”라고 고백했다.
기자는 2km 정도만 시각장애체험을 했지만 학생들은 5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다. 안대를 벗자 갑자기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속이 울렁거리며 메스꺼웠고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으로 2km를 걷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하지만 이 거리를 비장애인으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이었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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