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이 175cm.1498~1499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로마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을 만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품이 되어야 한다”
미켈란젤로의 걸작인 ‘피에타’가 제작되기 전, 의뢰인은 그에게 이런 계약 조건을 걸었다고 하죠.
베드로성당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에 ‘피에타’가 있습니다. 1499년 프랑스인 추기경 ‘장 드 빌레르’ 주문으로 제작된 이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24살에 탄생시킨 걸작입니다. 결국 그는 의뢰인과의 계약서대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들마저 압도한다는 찬사를 받고야 맙니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르네상스의 조각, 성화 속에 단골로 등장하지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합니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마리아보다 외소한 예수의 몸
피에타가 공개되었을때 그 아름다움에 모두가 넋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마리아보다 작은 예수의 몸과, 아들의 시신을 안고 슬픔에 잠겨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너무 젊고 어리게 표현 돼 있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주위의 그런 지적에 “너네들이 뭘 알겠느냐(?)”며 조롱 했다고 하죠. 신기하게도 앞모습과는 달리 위에서 내려다본 예수의 몸은 아주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하늘에 계신 오직 한분만이 볼 수 있도록 조각을 한 것이었죠. ‘작품위에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 피에타의 고딕 조각을 보면 그리스도의 몸이 마리아의 무릎 밖으로까지 나와 있어 부자연스러운 형태가 되는데요, 미켈란젤로는 마리아의 무릎부분을 옷의 주름으로 크게 보이게 하면서 그러한 부자연스러움을 없앴습니다. 피렌체에 있는 그의 작품 ‘다비드상’이 의도적으로 머리를 크게 조각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처럼 말이죠.
마리아의 얼굴을 아들인 예수보다 어리게 표현한 것은 성스러운 처녀, 동정녀라는 사실을 강조한 듯 보입니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미켈란젤로다운 발상입니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피에타’에 남긴 유일한 서명
미켈란젤로는 작품을 완성시켜놓고 매일 성 베드로 성당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고 합니다. 베드로성당에 자신의 작품이 놓여있었으니 어린 나이에 얼마나 흥분 될 일이었겠어요.
매일 그렇게 베드로성당을 노크를 하는데, 어느날 그는 주위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조각한 사람이 '일 고보(곱추 조각가)'라며?
청년 미켈란젤로는 크게 충격을 받게됩니다. 안그래도 외모컴플렉스가 있던 그에게 그 말은 수치 그 이상의 분노였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는 그날밤 성당에 몰래 들어가 마리아의 가슴부분에 '피렌체 출신 미켈란젤로'라는 글귀를 새겨놓고야 맙니다. '피에타'는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자신의 서명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진에서 보는것처럼 ‘피에타’는 방탄유리관으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그랬던 것은 아니였죠. 1972년에 호주에서 온 청년이 작품에 돌을 던져 마리아의 코와 왼쪽어깨를 훼손시킨 뒤 부터였습니다. 청년은 체포당시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해 전세계를 황당하게 만들더니 결국 정신이상자로 판명이 나고야 말았죠. 피에타는 복원된 뒤 방탄유리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피에타’는 도난사건 뒤 유리안에 갇히게 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참 많이 닮아 있네요. 가까이 있지만 가까이 볼 수 없는… '피에타'는 시대를 초월한 명작 중의 명작입니다. /연선우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