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인생의 물결' 넘실대는 경남 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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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인생의 물결' 넘실대는 경남 통영

윤이상의 밟지 못한 고향 땅, 인간적 고통에 몸부림쳤던 이순신을 품은 바다 서호시장·강구안의 생생함, 백일몽 같은 여행의 순간 삶의 거대함을 다시 느껴

  • 승인 2016-03-31 14:13
  • 신문게재 2016-04-01 9면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 오목하게 들어앉아 포근함을 주는 강구안 포구.
▲ 오목하게 들어앉아 포근함을 주는 강구안 포구.
윤이상의 고향 통영.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고향 통영 땅을 밟지 못한 윤이상이, 통영항이 보이는 남해안까지 와서 고향을 향해 손짓하며 눈물 지었다는 곳 통영. 봄이면 꼭 통영을 찾게 된다. 늠름한 종려나무와 손바닥만한 붉은 동백꽃이 그리워서일게다. 옅게 깔린 잿빛 구름 사이로 새삼스레 봄비가 오락가락 내린다. 떨어지는 것이 빗물인지 꽃잎인지 알수가 없다. 구름사이로 간간이 내비치는 햇살에 반짝이는 물비늘을 헤치고 간 곳이 한산도다. 이순신유적지가 있는 제승당 가는 길은 날씨 탓인지 사람은 보이지 않고, 꿀새만이 동백꽃에 부리를 박고 부지런히 꿀을 빨고 있다. 갯내음이 바람결에 훅 끼쳐와 비로소 내가 그리운 남쪽에 와 있는걸 실감한다.

이순신의 존영을 모신 영당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몇 번을 뵈었지만 이번만큼은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순신은 범접할 수 없는 영웅이 아니었다. 평범한 인간이었기에 명상적 우수에 잠기고 고독과 울분에 몸부림치는 한 인간이었다. 전쟁터에 도사린 피로와 결핍, 소름끼치는 공포,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없었던 장수였다. 후세사람들은 그의 인간적 고통과 슬픔에 애써 눈감은 채 기념비를 세우는 데만 열중했다. 나 또한 잡다하고 허황한 언어로 이순신의 삶과 죽음, 싸움을 담아낼 수 없다. 그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고뇌하고 슬퍼했던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목이 메일 뿐이다.

낯선 방문객에게 선뜻 커피 한잔 타주는 제승당 관리인 최석동씨(60)는 남을 위해 사는 게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했다. “내는 돈도 필요없고 뜻있는 곳에 쓰고 싶어서 거북선 만들어 모금함 만들라꼬 했심니더. 그란디 공무원들이 골치아픈 일을 만들려고 안해서 뜻대로 안됐심더. 이거 보이소. 신경을 써 머리가 이리 ?는기라.” 다만 천원씩이라도 모금되면 가난한 결손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돕는 게 꿈이란다. 아이들이 골고루 잘 크게끔 도와줘야 이나라 미래가 밝을텐데 뜻대로 안돼 안타깝다고 했다. 정치인들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국회의원 300명 필요없심더. 100명만 있어도 충분하지예. 내 같으모 국회해산 시킨다 아입니꺼. 국회의원들 하는 게 머 있노?” 커피를 홀짝이며 얘기를 듣다보니 2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최석동씨는 마지막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영산홍 필 때 또 오이소. 쥑입니더. 그라고 매표소에서 지 이름 대모 꽁짜로 들여보내 줄 깁니더.”

통영여객선터미널 옆 서호시장은 번잡스럽고 활기가 넘친다. 손님과 생선가게 주인간의 사소한 소란들, 생선대가리를 치는 아저씨와 그물 망태기에 가득 들어있는 석화를 꺼내 까는 아지메들의 삶이 진짜 통영의 모습이다. 통영에 오면 반할 만한 음식이 셀 수 없이 많지만 서호시장의 시락국을 먹어볼 참이다. 오후 3시가 훌쩍 넘어 뱃속에서 화차 지나가는 소리가 요란해 밥 두그릇은 거뜬히 먹어치울 기세다. 우리가 먹는 시레기국과 같은 시락국을 한술 두술 뜨다보니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가 끓여주시던 어릴적 고향의 맛 시래기국. 요즘들어 부쩍 쇠약해지신 엄마의 시래기국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으려나.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일인줄 알았다. 불과 몇 년새 피붙이를 연달아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송이째 떨어져 짓이겨진 동백꽃을 보며 달콤한 슬픔에 젖는 낭만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님을 알게 되더란 말이다.

해마다 통영을 찾았지만 감춰진 보물이 따로 있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강구안 얘기다. 중앙시장과 동피랑을 끼고 오목하게 들어앉은 강구안 포구는 마침 고깃배들이 가득 들어와 장관을 이뤘다. 중앙시장을 몇 번이나 들렀건만 이런 곳을 몰랐다니 등잔 밑이 어두웠다. 알록달록한 집들과 고깃배들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광에 한껏 기분이 달뜬다. 문화광장 모퉁이에서 술취한 노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중년 여인의 지친 기색에서 날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제트기처럼 쉴새없이 날았다 앉았다를 하는 갈매기의 울음소리도 심상찮다. 봄이라서 그런가. 흡사 발정난 암코양이 울음소리와 똑같아 깜짝 놀랐다. 그래, 때는 바야흐로 동물들의 짝짓기 계절 아닌가.

때때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네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이냐고.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랭보는 왜 생명과도 같은 시를 헌신짝 버리듯 했을까. 잠깐의 치기어린 일탈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랭보는 죽는 날까지 거칠고 원초적인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를 유랑하는 신산한 삶을 자처했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다만 꿈꿀 뿐이다. 여행은 내게 백일몽과 같은 것. 나의 삶도 언제나 너무 거대해서 아름다움에는 헌신할 수가 없다.

▲가는길=대전복합터미널에서 첫차가 6시 30분이다. 직행버스는 3시간 소요되고 우등버스는 2시간 30분 걸린다. 승용차로는 남대전에서 대전통영 중부고속도로를 타면 된다.

▲먹거리=봄철은 도다리쑥국, 멍게 비빔밥이 추천 메뉴다. 통영의 특미 꿀빵은 오미사꿀빵이 원조다. 통영은 사시사철 별미가 많다. 충무김밥, 복국, 굴, 시락국, 빼떼기죽 등. 물메기탕은 겨울에 맛볼 수 있다.

글·사진=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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