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즙’이 재판을 받았던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역사에 한 자취를 남겼던 ‘무즙사건’은 1964년 시행된 서울시내 전기중학입시공동출제문제에서 시작됐다.
자연과목 18번 문제 중 ‘엿을 만드는 순서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디아스타제’가 정답이었지만, 일부 학생들이 보기에 있던 ‘무즙’도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으므로 답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학부모들도 가세했다.
1964년 12월 22일 학부모 20여명이 솥에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에 난입해 “이 엿을 먹어보라”며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학부모들에 의하면 당시 김원규 서울시교육감이 “만약 무즙으로 엿이 된다면 자연 18번 때문에 떨어진 수험생은 구제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었다. 잠시 여담이지만 ‘엿 먹어라’는 욕설이 이 사건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 된 것은 아니다.
명문중학교 입학은 명문고와 서울대로 이어지는 ‘엘리트코스’라 여겼기에 자녀교육열에 물불을 가리지 않던 학부모들까지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교육당국의 갈팡질팡한 정답 번복은 사태를 걷잡을 수 없는 길로 치닫게 했다. 해가 바뀐 1965년 2월 25일 무즙학생 39명이 급기야 ‘입학시험합격자확인청구소송’을 내게 됐다.
그리고 51년 전 오늘(30일)은 엿을 만들 수 있었던 ‘무즙’의 누명이 벗겨지던 날이었다.
서울고법특별부(재판장=이명섭 부장판사)는 “당화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은 ‘디아스타제’ 뿐만아니라 ‘디아스타제’를 포함한 무즙도 정답이 될 수 있다”고 판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무즙학생 39명의 손을 들어준 셈이었다.
이 판결로 낙방된 학생들이 구제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일부 권력인사 자녀들을 덤으로 입학시켰다가 탄로돼 당시 청와대 비서관 2명과 교육감 등 관료들이 줄줄이 옷을 벗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무즙’의 매서운 한 풀이였다.
‘무즙사건’은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과열될 대로 과열된 대한민국 교육열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못 살고 못 먹던 시대였지만 자식의 교육만큼은 오늘날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던 그 시절 우리들의 풍경이었다./김은주 기자
*위 기사는 동아일보 1964년 12월 22일자, 1965년 3월 30일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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