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장석주 에세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중에서
전주의 밤엔 비밀이 없다. 아주 작은 말소리부터 문 여닫는 소리까지 모두 들린다. 편집기자협회 정기총회 참석 차 들른 전주의 늦은 오후. 사람들로 북적이던 한옥마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집마다 불이 꺼지고 어느 시골마을처럼 고요했다. 도란도란 말소리가 잦아들고, 까만 기왓장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지붕을 덮은 채 모두가 잠든 밤. 낮은 담장너머 방마다 켜진 불빛이 정겹다. 한옥을 지탱하는 기둥을 쓸어내려본다. 나무가 겨울을 건너며 생긴 굳은살이 느껴졌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몸을 눕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일정에 지친 하루의 굳은살이 연해지는 듯했다.
▲내부의 무늬들 =날이 밝자 어제 보이지 않던 한옥들이 제각각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뿐히 날아오르는 새의 날개 같은 처마.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의 곡선이 넘실대는 파도 같았다.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사실, 한 낮의 전주 한옥마을에선 고즈넉한 정취와 고요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슬로시티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SNS를 타고 입소문이 급속도로 퍼져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만큼 사람도 많았다. 트럭도 지나다닐 만큼 꽤 넓은 길가엔 발 디딜 틈 없이 '먹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쉬웠다. 전날 밤 보았던 정겨운 시골마을은 온데간데없었다. 가게 앞 늘어선 대기 줄이, 머리를 길게 땋아 놓은 것 같이 얽히고 설켜 있었다.
전부 둘러보지 못했지만 한옥마을 곳곳에는 한지원, 공방촌, 서예관, 술 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다. 모두 둘러보아도 하루가 다 모자를 지경인데 너무 먹을거리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야속했다. 한옥의 화려한 겉모습에 심취하기보다 내부의 무늬들, 나무의 숨결을 느끼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는길=승용차를 이용한다면 계룡IC를 지나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논산, 익산을 지나 완주JC와 동전주IC로 빠져나오면 된다. 시간은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버스를 탄다면 대전복합터미널이나 청사고속버스둔산정류장에서 전주고속버스터미널로 가면 된다. 이후 684번 버스를 타고 전동성당·한옥마을 정류장에서 내린다. 터미널까지 1시간 20분, 한옥마을 진입까지 총 소요시간은 2시간정도 걸린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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