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이 15일 대전전역에서 실시된 가운데 소방차량이 시민들의 양보를 받으며 유성고속버스터미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성희 기자 token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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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2시. 대전 북부소방서에 짧고 단호한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출동 준비를 마친 대원들이 민첩하게 차량에 올랐다. “왜앵~”하는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휘차량을 선두로 순찰차와 펌프차 2대, 구급차가 사이렌을 쉼 없이 울리며 소방서를 빠져나왔다.
대전 소방본부는 이날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을 펼쳤다. 초기 화재진압 가능성을 높이고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기자도 지휘차량에 탑승해 도로 위 출동여건을 살폈다. 훈련은 북부소방서~충대정문오거리~궁동네거리~유성고속버스터미널~유성온천역네거리~충대정문오거리~북부소방서 구간(약 12km)에서 진행됐다.
사이렌 소리에 만년교로 진행하던 차량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지휘차를 선두로 출동차량들이 과학공원네거리를 지나 대학로에 접어들자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시속 50km의 속도로 주행하는 동안 일반 차량들은 2차선으로 양보하거나 잠시 멈춰 소방차의 길을 터주었다.
박종현 소방대원은 “실제 출동할 경우 최대한 빨리 화재 현장에 도착하기 위해 평균 속도 70~80km로 운행한다”며 “오늘은 훈련 상황이라 시민들과 운전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홍보효과 등을 위해 이 속도로 운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구성 삼거리에서 한 택시가 과학공원 네거리 쪽으로 좌회전을 시도한 것이다. 멈춰 설 것이라 생각했지만 택시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좌회전을 했다. 주행 중이던 출동 차량들은 속도를 줄여야만 했다.
충대정문오거리에 다다랐다. 2차로가 신호대기 중인 차들로 차있었다. 지휘차는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 소방차량을 조심스럽게 인도했다. 신호가 바뀌었지만 대기 차량들은 출동차량들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는 배려를 보였다.
출동 7분여 만에 유성고속버스터미널로 진입했다. 하지만 출동차량들은 속도를 줄여야만 했다. 터미널 쪽 차로엔 택시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반대편엔 군데군데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 때문에 원활한 주행이 불가능해서다.
이 구간에서 속도는 절반 이하로 줄어 20km 이하를 유지했다. 반대편에서 주행하는 차량들이 최대한 간격을 좁히며 길을 터줬지만 제 갈 길 가기 바쁘다는 듯 곧장 주행하는 운전자들도 있었다. 약 500m의 짧은 거리임에도 통과하는데 1분 30초 정도가 걸렸다.
차량 통행량이 많은 유성온천역네거리에 도착했다. 출동차량이 들어서자 정신없이 지나가던 차량들이 약속한 듯 멈췄다. 모세의 기적은 볼 수 없었어도 빛나는 시민의식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충대정문오거리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시민들에게 소방차 양보 관련 전단지를 나눠주며 협조를 당부했다.
충대정문오거리 횡단보도에서 만난 시민 박모(26)씨는 “미국에 여행을 갔을 때 소방차가 출동하자 차량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며 “우리나라도 긴급한 상황에 출동하는 소방차를 당연히 양보하는 시민의식이 형성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상우 북부소방서장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소중한 것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우리의 가족과 이웃이 급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점을 이해하시고 적극적으로 양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한편 도로교통법에는 긴급 출동하는 소방차에 길을 양보하지 않으면 20만원의 과태료를 물도록 명시하고 있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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