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책협력부장 |
1999년 개봉된 공상과학 영화 '매트릭스'는 인간지능을 넘어선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머신 사피엔스가 호모 사피엔스를 지배하는 219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넘어서는 상황이 공상과학 영화 속이 아닌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미래학자들은 그런 상황이 오리라는 데에 대체로 동의한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에 대하여 의견이 다르다. 컴퓨터 과학자이자 공상과학 소설가인 빈지는 기술 발전 속도로 볼 때 늦어도 2030년이 되기 전에 컴퓨터 지능이 인간지능을 넘어서는 이른바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이 도래할 것이며, 그 후 세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능이 낮은 인간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평판 스캐너, 뮤직 신시사이저 등을 발명해 에디슨의 승계자라는 칭송을 받는 발명가이며, 컴퓨터 과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커즈웰은 특이점 개념을 더 구체화한다. 반도체 집적도가 무어의 법칙에 따라 가속되듯이 다른 기술들도 이른바 '가속의 법칙'에 따라 발전 속도가 빨라지며,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로 발전 속도가 빨라져서 2045년에 이르면 인간지능이 따라갈 수 없는 특이점에 도달할 것이라 한다. 커즈웰은 한 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과 결합해 인간의 지능을 확장할 것을 제안한다. 나노 로봇을 뇌에 삽입해 인간 지능을 담당하는 신피질을 컴퓨터와 연결함으로서 인간의 지능을 확장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모든 인간과 인공지능들은 컴퓨터 네트워크로 연결돼 하나의 거대한 '호모 머신 사피엔스'로 재탄생한다. 이 상태에서는 '너'와 '나'의 개념도 없고, 인간과 기계의 구분도 없으며 죽음마저도 없어지게 된다. 200만 년 전 신피질을 가지고 출현해 엄청나게 진화해 왔던 호모 사피엔스가 머신 사피엔스와 결합해 지능을 무한대로 확장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또 다른 진화를 이룩할 수도 있다. 커즈웰은 이것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유토피아로 본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앨런은 특이점이 그렇게 빨리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특이점이 오는 시기에 대한 빈지나 커즈웰의 예측은 기술의 발전이 점점 더 빨라진다는 '가속화 법칙'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기술 발전이 늘 그렇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공지능을 구성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중에서 하드웨어는 몰라도 소프트웨어는 결코 '가속화 법칙'에 따라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이점이 일어날 정도로 발전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들은 어떻게 서로 작용해 의식과 생각들을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해야 하는데, 뇌과학과 같이 복잡한 분야는 과학적 이해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앨런은 특이점이 2045년에 오는 것은 고사하고 21세기 말에 이르러서도 언제 올지 알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몇몇 게임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겼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는 없다. 그 게임에서만 우수할 뿐 다른 분야에서는 지능을 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견줄만한 인공지능을 만들려면 인간지능을 모방하는 것 외에 다른 수가 없다. 인간의 뇌를 충분히 이해하여야 하는 이유다. 필자는 인간의 뇌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머지않은 장래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뇌를 이해하는 것은 암을 정복하는 것보다도 어렵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이세돌이 이겼으면 좋겠다. 호모 사피엔스가 머신 사피엔스에게 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조성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책협력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