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설’이라 부르지 못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한 해가 시작되는 양력 1월 1일에 쓰기도 하고 우리 민족 고유의 설인 음력 정월 초하루에도 자주 쓰는 인사말이다. 헌데 이 새해 인사말이 우리가 예전부터 써오던 게 아닌 현대판 덕담이라는 사실은 생소할 것이다.
너무 익숙하지만 새로운 것들이 있다.
설 또한 그렇다. 설이 지금처럼 ‘설’이라는 제 이름을 얻기 위해 얼마나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잊고 지내왔다.
설을 설로 쇨 수 있었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음력 1월 1일에 지내는 설을 되찾은 지는 27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일찍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양력만을 사용해 설도 양력으로 지냈다. 1910년 한일합병을 하면서 일본은 우리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음력으로 쇠는 설을 구정(舊正)이라 깎아내리고 일본의 설인 양력 1월 1일 ‘신정(新正)’을 쇠도록 강요했다.
민족문화를 지키지 못하도록 방해도 이어졌다. 명절이면 떡을 하지 못하게 방앗간을 폐쇄하기도 하고 새해를 맞아 설빔을 차려 입은 어린이들에게 먹칠을 하는 파렴치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핍박에도 우리 민족은 양력설을 ‘왜놈 설’이라 부르면서 고유의 명절인 설을 지켰다.
광복 이후에도 수난은 계속됐다.
국제적으로 양력이 통용되는 상황에서 산업화 시대에 무역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이유로 신정을 지낼 것을 권장했다. 1985년에는 ‘민속의 날’로 지정해 하루 공휴일로 정하기도 했다.
정부의 줏대 없는 정책에 설은 오랫동안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어정쩡한 명절이 됐다.
그러다가 1989년 90년여만에 비로소 ‘설’ 이라는 제 이름을 되찾게 됐다.
#90년여 만에 되찾은 설
1989년 2월 4일자 중도일보 신문에서는 ‘되찾은 명절 설’을 대서특필 했다. 1천700만 명의 민족대이동 인파로 역과 터미널이 초만원을 이뤘으며 지역기업체에서는 보너스와 함께 최장 5일의 유급휴가를 받은 노동자들이 회사가 제공한 버스로 귀성길에 올랐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리고 부활한 설을 맞아 각 동별로 잔치를 열었다. 대전시는 그 당시 75개 동에 각각 20만원을 지원했다는 기사는 27년 전 화폐가치를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신문 사회면엔 눈에 띄는 한 가족 사진이 실렸다. 상가가 문을 다 닫은 거리를 아빠, 엄마, 세 아이들이 한복을 곱게 입고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걸어가는 모습은 요즘 찾아보기 힘든 추억이 됐다. 한복이 결혼식에서나 입는 특별한 옷이 되고 보니 명절날 한복을 입은 시민은 이렇게 옛 신문의 지면을 통해서나 볼 수 있는 귀한 모습이 됐다.
‘되찾은 설날’과 관련해 신문사에서도 회자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교열부(기사의 오탈자와 잘못된 문맥을 바로잡는 업무) 기자가 ‘구정’(舊正)이란 옛 명칭을 ‘설’로 고치는 과정에서 ‘설’과 다른 의미의 ‘구정’(區政)까지도 '설'로 바꿔버린 것이다. '구정 설명회'를 '설 설명회'로 바꿔버렸으니 본인에게는 곱씹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실수였겠지만 후배들에겐 이맘때면 곱씹게 되는 헤프닝이었다.
#당신의 설은 안녕하십니까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는 설 연휴 동안 3645만명이 대이동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보다 2.7%가 늘어난 수치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귀성객이 줄어든다는 통계와는 상반되는 조사결과다. 무엇보다 연휴 기간이 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초부터 쏟아진 절망스런 전망만큼이나 답답한 길을 뚫고 달려가는 고향에서 따뜻한 희망을 가득 충전하고 병신년 새해를 맞자./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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