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 있는 초록색 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곳곳에 구경거리가 널려 있다. 버려져 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가구 위에 책과 소품들이 올려져 있고 머물렀던 사람들의 소소한 방문 기록도 시선을 끌었다. 기자가 묵은 6인실엔 작은 2층 침대 3개가 디귿자로 놓여 있었다. 바닥은 따뜻했지만 오래된 건물은 영하의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찬 공기를 흡수했다. 산호여인숙은 침대 대신 온돌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게 더 따뜻하다고 주인은 말했다.
대전의 유일한 게스트하우스 산호여인숙이 오는 5일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대흥동 문화의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2008년 8월 문을 연 산호여인숙은 게스트하우스 기능뿐 아니라 지역에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하나의 창구로 자리했다. 예술가가 장기간 머물며 창작활동을 하기도 하고 작은 전시와 공연, 프로젝트를 진행해 공유했다.
산호여인숙은 지난해 10월 '기자 없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봄 산호여인숙의 폐점을 알린 바 있다.
업무차 대구에서 온 박진아(28·여)씨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산호여인숙을 알게 됐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흘간 예약했다. 산호여인숙을 처음 마주하고 난 감정은 “아기자기한 게 좋다”였다. 산호여인숙이 이번 주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박씨는 기자에게 소식을 들은 후 “저녁에 들어올 때 맥주를 사서 들어와야겠다”고 말했다.
이번 겨울을 끝으로 산호여인숙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한 이용객과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산호여인숙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 지역 음악인 노의영(31)씨는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예술가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어울리고 쉬어갈 수 있는 사랑방같은 곳이었다”며 “대흥동 문화의 중심축 하나가 없어져 아쉽지만 산호 주인 두 분과 거쳐갔던 다양한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많은 활동이 있기 때문에 슬픔보단 앞으로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이곳을 이용한 한 방문객은 SNS를 통해 “곧 문을 닫는다고 했는데 다시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남겼다.
산호여인숙 측은 폐점 결정에 대해 “요즘 보도되는 젠트리피케이션(원도심 발전으로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은 대흥동 현상의 표피만 본 것”이며 “산호여인숙이 문 닫는 이유를 그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다만 “처음 산호여인숙을 열었을 당시와 현재의 대흥동 상황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많이 달라졌고 그 안에서 변화를 느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임효인 기자 hyo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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