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구정백야 방송 장면. |
2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차행전 부장판사)에 따르면, MBC 일일 드라마 '압구정 백야'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제재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에서 법원은 “방통위의 제재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4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평일 밤 9시에 방영된 '압구정 백야'는, 가족을 버린 친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딸이 어머니가 재혼한 가정의 의붓아들을 유혹해 며느리가 되는 내용을 그렸다.
해당 드라마는 방송 당시 연일 구설수에 올랐다. 모녀가 서로에게 폭언을 퍼붓다가 급기야 구타까지 행하는 패륜적인 내용을 담은 탓이다. 주요 등장인물이 개연성 없이 죽기도 하는 등 황당한 설정은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에 방통위는 심의를 통해 지난해 4월 드라마 관계자에 대한 징계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MBC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징계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방통위의 징계 이후에도 '압구정 백야' 측은 막장 전개를 철회하지 않았고, 방통위는 재차 '경고' 처분을 내렸다.
재판부는 “지상파 방송사는 가족 시청 시간대에 가족 구성원 모두의 정서·윤리 수준에 적합한 내용을 방송할 책임이 있다”며 “이를 위반한 정도가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방송사가 막장 드라마를 제작하는 이유는 단연 시청률 때문이다. 시청률은 드라마의 성패를 평가하는 데 있어 거의 절대적인 기준이다.
막장 드라마는 시청률이 잘 나온다. 황당한 설정으로 논란이 거듭될수록 논란이 곧 '마케팅'이 되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욕하면서도 본다”고 할 정도로 채널을 돌리지 못하는 데 이유가 있다. '압구정 백야'의 경우 한때 20% 가까운 시청률을 찍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이니 방송사는 쉽게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막장 소재의 유혹에 사로잡힌다. 제재를 받더라도 강력한 조치가 아니어서 이를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이번 판결은 사회적 해악으로까지 비판받는 막장 드라마를 퇴출시키는 데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도록 만드는 대목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아무래도 제도적인 차원에서 불이익을 준다고 하면 방송사에서도 몸조심하게 되고, 제작진도 시나리오 검토할 때 패륜적 설정을 줄이려고 노력할 것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재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하 평론가는 “시청률 싸움을 하다보면 잠깐 움츠러들었다가 또다시 자극적인 설정을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재나 처벌이 문화적 분위기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계속 공론장에서 비판하고, 시청자는 작품성 위주로 골라보려고 노력하고, 제작진은 완성도 있고 좋은 작품 만들려는 분위기로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지상파는 이번 판결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요 1~2년간 회자되는 드라마는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나 '미생', JTBC의 '밀회', 그리고 현재 방영 중인 '치즈인더트랩'이나, '시그널' 등이다.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으며 연일 회자된다.
지상파가 막강한 매체 영향력과 제작 여건을 갖고 있음에도, 오히려 수준 낮은 막장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는 데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통속극의 특성'이라는 변명은 구차하기만 하다.
노컷뉴스/중도일보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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