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충남 경찰이 공개한 부여 '농약 두유' 사건 피의자의 두유 구입 모습 폐쇄회로(CC)TV 캡처 사진. 경찰은 김모(75)씨가 농약을 넣은 두유를 이웃에게 건넨 정황을 잡고 그를 살인미수 혐의로 붙잡아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충남지방경찰청 >> /연합 |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70~80대 노인들이 수십년 간 얼굴을 맞대고 살아온 이웃과 갈등을 겪어오다 결국 살해하거나 살해하려고 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10여 전만 해도 현대인들의 영혼의 안식처였던 시골마을은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각박한 공간이 된 지 오래됐다는 자조가 나오고 있다.
부여경찰서는 17일 자신을 험담했다는 이유로 두유에 농약을 타 이웃에게 건넨 A씨(75)를 살인미수 혐의로 붙잡아 조사 중이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지난해 12월 21일 상점에서 구입한 두유에 주사기로 농약을 투입, 이웃인 B씨(55) 집 문 앞에 몰래 가져다 놓은 혐의다. 누군가 자신에게 선물한 것으로 생각한 B씨는 아들 등 주민 3명에게 두유를 나눠줬고, 두유를 마신 3명은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조사에서 A씨는 “B씨가 자신을 험담해서 범행했다”고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법원은 A씨 건강 등의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으며 경찰은 추후 영장을 재신청할 방침이다. 부여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농약 사이다' 사건과 판박이다.
경북 상주에 사는 80대 C할머니는 지난해 7월 14일 오후 2시 43분께 경북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 마을회관에서 사이다에 농약을 몰래 넣었다.
이후 이를 마신 같은 할머니 6명 가운데 2명을 숨지게 한 혐의(살인 및 살인미수)가 인정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현재 항소한 상태다. C할머니는 이같은 행각을 벌이기 직전 피해 노인들과 개인적인 문제로 심하게 다툰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온 이웃과의 갈등 때문에 조용한 농촌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점에서 부여사건과 상주사건은 닮아있다.농촌마을의 이같은 각박함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7년 전인 2009년 4월 충남에서도 앞선 두 사건과 유사한 충격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자신의 아내와 이웃주민 등 3명에게 독극물이 든 음료수를 먹여 살해한 이른바 '보령 청산가리 살인사건'이다. 당시 자신의 불륜으로 가정 불화가 심했던 70대 D씨가 이에 대해 충고하는 E씨 부부에게 원한을 품었던 것이 비극의 발단이 됐다. 사건 발생 2년여 뒤 대법원은 D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이제는 시골에서 조차 동네 주민끼리 강력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 무섭다”며 “농촌에서도 오랜시간 보아온 이웃까지 서로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푸념했다.
내포=강제일·구창민·부여=김종연 기자 kangj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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