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으로 허기 달래는 설움보다 일 할 수 있다는 게 더 감사
“시급 5000원도 감지덕지… 제때 주기만 해도 고맙쥬…”
▲ 대전 도시철도역 주변에서 인근 학원의 홍보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 |
으능정이 거리 한복판에 서서 둘러봤다.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전단지를 돌리는 할머니들과 이들을 무심히 지나치거나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 바닥에 버려지는 전단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바쁘게 전단지를 돌렸다.
궁금했다. 할머니들은 왜 전단지를 돌릴까. 이들을 지나치기만 했기에 먼저 다가가기 힘들었다. 한참을 주저하다 용기를 내 물었다. “추우실텐데 왜 이렇게 힘들게 전단지를 돌리세요?”
정신없이 전단지를 돌리던 김순애(82·가명) 할머니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당연히 춥지. 그래도 전단지라도 돌려야 입에 풀칠하고 먹고 살 수 있는 겨.” 김 할머니는 언제 거리에 나왔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매일 오전 11시 40분께 나와 준비를 마친단다. 그 뒤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전단지를 돌린다고 했다.
일당은 장수가 아닌 시간으로 계산한다. 그는 시간당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5000원을 받고 있지만, 이것도 감지덕지라고 한다. “5000원이라도 주는 게 어디여. 우리 같은 사람들 써주는 게 오히려 고맙지.”
김 할머니가 하루 7시간 전단지를 돌리고 받은 3만5000원은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 약값으로 들어간다. 6명의 자녀를 뒀지만,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단다. 김 할머니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기자에게 한마디 던진 후 자리를 옮겼다.
“(전단지 할머니를) 더 만나고 싶거들랑 지하철 타고 탄방역으로 가봐.”
이날 오후 1시 40분 탄방역에 도착했다. 한 무리의 일행과 함께 4번 출구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지상이 가까워지자 전단지 할머니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내리기 무섭게 전단지를 건넸다. 직업전문학교에서부터 세무회계학원, 컴퓨터학원 등 각종 고용실습 관련 전단지가 어느새 기자 손에 들려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할머니들도 김 할머니와 비슷한 이유였다. 하루 먹고살기 위해,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윤진순(79·가명) 할머니가 씁쓸히 말했다.
“다 늙은 노인네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다행히 전단지라도 돌려서 하루하루 벌어 사는 게지.”
윤 할머니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곳에서 전단지를 돌린다. 인근에 위치한 대전고용센터를 찾는 사람이 많아 일거리가 다른 곳보다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윤 할머니가 받는 시급은 5000원에 불과하다. “최저시급도 못 받고 있다”는 기자의 말에 윤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5000원이라도 주면 고맙지. 그것보다 제때 일당이나 챙겨줬으면 너무 좋겠어. 많은 돈도 아닌데 연락안되는 일이 부지기수고, 찾아가 보면 아예 학원이나 가게가 문 닫혀있는 경우도 허다혀.”
전단지 할머니들은 식사를 제때 하는 것도 어렵다. 인적이 뜸한 오후 3~4시 사이 집에서 싸온 주먹밥이나 빵으로 간단히 허기를 채운다고 한다. 화장실은 주변 건물 음식점이나 카페를 이용한다. 이때가 유일한 할머니들의 쉬는 시간이다.
하루 동안 만난 할머니들은 대부분 귀를 덮는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로 목과 얼굴을 감고 있었다. 상·하의에 3~4겹을 껴입고 두꺼운 겨울 솜잠바로 중무장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손에는 낡은 목장갑이 끼여 있었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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