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주둔하다가 참전한 21연대의 임무는 남하하는 북한의 제3, 4사단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제21연대는 경부국도와 철로를 통제하고, 전의면 북쪽과 교량을 폭파하는 등 방어준비를 했다. 개미고개를 담당했던 부대는 젠슨 중령이 이끄는 3대대였다.
방어선 구축 하루만인 7월 9일 오후 북한군 105전차사단이 들이닥쳤다. 북한군은 전차를 앞세워 개미고개 북측 전방 전의면에 구축한 저지선을 뚫었고, 3사단 보병 200~300명도 가세해 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결과는 아군이 항공폭격 등의 지원을 받은 덕분에 북한군은 패퇴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공격은 또다시 시작됐다. 짙은 안개로 동태 파악이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군 전차사단과 보병 4사단의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미군이 맞섰지만, 오전 11시30분께 진지를 내주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7월10일에는 미군 21연대 3대대가 북한군을 공격해 빼앗긴 진지를 탈환했지만, 전황이 불리해지자 철수했다. 11일 새벽 북한군의 대대적인 포격공격에 미군 34연대 통신기능이 마비되고 아군의 진지 모두 북한군의 손에 넘어갔다. 북한군이 새벽 안개를 틈타 사전에 침투한 소수 병력이 지휘소와 박격포 진지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미군은 젠슨 중령을 포함해 60%에 달하는 병력 손실을 입고 조치원 방향으로 철수했다. 북한군의 남진을 닷새 동안 지연시키는 성과를 거둔 이 개미고개는 667명의 참전용사 중 517명이 전사·상하는 등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다.
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2004년 12월 '자유평화의 빛 위령비'를 세우고 매년 7월 11일 보훈 가족과 미군, 기관단체장 등을 초청해 추모제를 열고 있다. 올해 10월에는 개미고개 전투 65년만에 유해가 발굴돼 영결식이 열리기도 했다.
세종=윤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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