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동국무원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민화나 토우, 무덤의 호석에는 원숭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원숭이가 지닌 지혜와 재치를 본받고자 하는 조상들의 뜻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잔나비(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동물이다. 만능 재주꾼인데다 자식과 부부지간의 극진한 사랑은 인간과 비슷할 정도로 애정이 섬세하다고 한다. 영장류인 원숭이는 인간과 생태적으로 유사하다. 팔다리 움직임이 자유롭고 모성애도 강하다. 꿈도 꾸며, 잠꼬대도 한다. 심지어 하품도 하고, 코도 골고, 기침도 하고, 딸꾹질까지 한다.
동양에서는 불교를 믿는 몇몇 민족을 제외하고는 원숭이를 ‘재수 없는 동물’이라고 기피하면서도 사기(使氣)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에선 원숭이가 좋은 건강과 성공, 수호의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숭이는 동물 가운데 가장 영리하고 재주 있는 동물로 꼽히지만, 너무 사랑을 닮은 모습과 간사스러운 흉내 등으로 기피를 당하기도 한다. 자신의 띠를 말할 때 ‘원숭이띠’라고 말하기보단 ‘잔나비띠’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속설 때문이다.
우리 민족에게 비친 원숭이의 대체적인 모습은 꾀 많고, 재주 있고, 흉내 잘 내는 장난꾸러기로 이야기할 수 있다. 도자기나 회화에선 모성애를 강조하고, 스님을 보좌하는 모습이나 천도봉숭아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으로도 많이 표현됐다. 선비들이 차고 다니던 인장은 물론 벼루와 연적에도 원숭이가 등장했다.
하지만 조상들은 원숭이를 재수 없는 동물로 인식해 원숭이를 잔나비로 대칭하고, 아침에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렸다. 다행히 불교의 영향과 중국과 일본의 원숭이 풍속 전래 등으로 다소 부정적인 관념이 희석됐다. 원숭이 이야기에선 원숭이의 생김새나 흉내내기, 재주, 꾀 등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재주를 과신하거나 잔꾀를 경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또한 탈판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사람의 흉내를 적나라하게 냄으로써 노장의 형식적인 도덕이나 신장수의 비행을 풍자와 해학으로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원숭이띠는 천부적인 재질인 숫자놀음과 지혜를 잘 이용하는 수학·공학적인 직업인으로 각광을 받는다는 등의 속설이 있다.
원숭이는 나쁜 기운을 없애주는 벽사로서 어리석인 인간을 풍자하는 해학의 대상으로서 장수와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행운의 동물로 사랑받아왔다. 미숙한 지혜로 저지르는 실수의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이기도 하다. 12지에 원숭이가 자리한 것은 재주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 소인배가 아닌 노력을 다해 참사람이 되라는 선인들의 가르침이 아닐는지.
송익준 기자 igjunbabo@
자료참조=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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