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천 마서면 송석리에 있는 '오열사' 묘지. |
마을이 장악되는 과정에서 살육이 계속됐다. 당시 장항농업중학교 5학년이던 김달식(20), 신윤식(20), 양태순(19), 임상덕(19), 최승상(21) 등의 학생들에게 북한군은 평온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적일 뿐이었다.
이들이 학교 뒷산에서 '부국동지위원회'라는 조직을 자체적으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서천 연도 앞바다에 정박한 국군 함정을 찾아 북한군의 동향을 제보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학생들로부터 장항제련소 뒷산과 비인면 월명산에 집결해 있는 북한군의 위치를 파악한 아군이 함포 사격을 가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장항과 군산 인근의 해안선을 중심으로 북한군의 진지실태를 파악하고 해안선에 포진한 북한군이 군용으로 쓰는 전화선이나 전기선 등 통신시설을 파괴하며 교란활동을 통해 해안을 장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활동에 돌입한 지 두달여 후인 9월 이들 5명은 북한군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아군의 함대로 이동하기 위해 효자도 인근의 송석리 나목섬에서 배를 물색했다. 사공과 승선 날짜를 논의한 후 기다리던 당일, 북한군이 들이닥쳐 5명을 끌려갔다. 사공이 5명을 송석리 인민위원회에 밀고한 것이다. 북한군에 끌려가는 주민들을 탈출하게 하기 위한 2차 임무였지만, 결국 9월 3일 체포된 것이다.
검거된 학생들은 취조와 고문을 받은 후 대전형무소로 이감됐지만, 그 이후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급히 패퇴하던 북한군이 자행한 대전형무소 집단 희생사건의 희생자에 포함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하고 있지만, 확인된 건 없다.
앞서 말한 이 5명이 바로 서천의 '오열사'(五烈士)다. 학생의 신분으로 순국한 다섯 학도의 숭고한 호국 혼을 기리기 위해 서천군은 1991년 마서면 송석리에 오열사묘를 조성하고 매년 9월 9일 추모제를 열고 있다.
세종=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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