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남이섬은 설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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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남이섬은 설렘이었다

관광객으로 가득 찬 미지의 나라 같은 섬, 동화책 속으로 들어온 듯

  • 승인 2015-12-10 13:45
  • 신문게재 2015-12-11 9면
  • 박희준 기자박희준 기자
[주말여행] '나미나라공화국' 남이섬

섬은 '알'이다.
당신의 고통이 품고 있는, 이를테면 난생(生)하는 부족의 비밀 같은 것. (…)
무엇보다 바람을 조심해야 한다.
내 몸을 들어 올리려는 듯 사방천지에서 밀려오는 바람, 몸보다 먼저 떠밀려가는 건 한없이 떠도는 마음이다.

박진성 산문집 「청춘착란」 中

배로 5분. 해외여행을 하는 것도 아닌데 여권을 소지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다. 2006년 나미나라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한 남이섬은 또 다른 대한민국이다. 조선 세조 때 병조판서를 지내다 역적으로 몰려 요절한 남이장군에서 따온 이름, 남이섬. 평일이라 그런지 배에 탄 사람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바다건너 멀리 있는 미지의 나라를 여행하러 가는 느낌이었다. 이미 다녀간 여행객들은 생동하는 봄이나 수풀이 우거진 여름, 낙엽이 절정인 가을이 좋다고 하지만 모든 생명이 잠든 겨울. 누구에게나 공평한 풍경을 제공하는 겨울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어릴 적 보았던 드라마 '겨울연가' 때문이 아닐까.

'욘사마 신드롬'의 근원지이기도 한 남이섬은 이젠 춘천·가평을 찾는 이들에게 꼭 들러야 할 명소가 되었다. 한껏 들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설레는 마음은 다 똑같다.

▲남의 나라? 우리나라!=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했던가. '나미나라공화국'이라 일컫는 남이섬은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타국을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길게 뻗은 가로수와 이국적인 풍경, 한국인보다 많은 외국인들. 어느 여행객의 말을 빌리자면 외국인이 너무 많아 '남의 나라'라고 부를 정도다.

작지만 육지와 떨어진 섬이다 보니 첫배와 마지막 배를 기점으로 모두가 잠드는 곳. 남이섬 내에 유일한 숙소인 '호텔 정관루'에서는 숙박객을 선착장에서 호텔 바로 앞까지 픽업차량으로 데려다준다. 화가, 공예가, 작가 등 예술가들이 디자인한 방들. 곳곳에 눈길이 머무는 조형물들이 독특했다. 정관루를 나서면 모든 곳이 포토존이다.

인위적인 건물이 아닌 자연스레 풍경과 하나가 되는 곳. 길을 걷다 보면 청솔모는 물론 타조나 오리와 같은 가까이서 보기 힘든 동물들이 자연스레 옆을 지나간다. 겨울 남이섬은 곳곳이 쉼터다. 손이 시린 여행객들을 위해 모닥불을 곳곳에 피워놓는다. 이런 작은 배려가 남이섬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닐까. 기념품 파는 곳엔 남이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공예품이 가득하다. 여기저기 둘러보다보니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섬 곳곳(정관루, 화장실, 식당 등)에 동화책이 있다는 것이다.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나무들과 조형물들 사이에 있다 보니 마치 책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무가 우거져서 일까.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밤처럼 깜깜했다. 은행나무 길, 메타세쿼이아길 등 숲길에 조명이 더해지니 더 아늑했다. 마지막 배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하나, 둘 섬을 떠났다. 왁자지껄했던 낮과는 달리 고요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물속으로 길을 내는 불빛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가까이 있었으면, 고향이었으면, 내 집이었으면=알람 없이도 눈이 저절로 떠졌다. 맑은 공기를 실컷 마셔서일까. 전날 저녁 반주로 마신 소주에도 끄떡없었다. 남이섬은 아침 산책을 다니기에 최적의 장소다. 맑은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고 울창한 나무와 뿌연 안개 사이로 물에 번지듯 날아다니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또 한 번 마음을 정화시켜주기 때문이다. 남이섬 남쪽 창경대에 서 있으니 평소 보기 드문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나무데크에 '남이섬은 오늘이 좋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보고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짐을 맡기고 섬 중심부 식당가 근처 바이크센터로 갔다. 1·2·4인용 자전거부터 전기자전거까지 다양하다. 섬 둘레 5㎞,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다보니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숲길도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른 나무의 군락지다. 지도를 들고 다니며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근처에는 무엇이 있는지 체크해가며 도는 것이 좋겠다.

기왕이면 천천히 눈에 담기위해 30분이 아닌 1시간동안 자전거를 빌려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짐을 챙겨 막상 떠나려니 아쉬웠다. 하룻밤 묵고 나니 어느덧 정들었나보다. 고향집 같이 편안한 정관루를 떠나 다시 배 타러 가는 길. 하루에도 수십 번 여행객을 실어 나르는 여객선이 저 멀리 보였다. 설레임 싣고 와 한가득 풀어놓더니 떠나는 이 아쉬움 달래듯, 뱃머리 위에 나미나라공화국 국기가 힘차게 펄럭였다.

▲가는길=내비게이션에 '남이섬 매표소' 혹은 '남이섬 선착장'(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북한강변로 1024)을 검색해서 가면 된다. 대중교통은 기차나 버스를 이용해 가평역으로 간 뒤 도보(20분)나 차량(5분)으로 가거나 무인대여 자전거(오전 9시~오후 6시)를 이용할 수 있다. 이후 선착장에서 배를 타거나 날씨가 좋다면 짚와이어를 타도 좋겠다.

▲먹거리=남이섬 안에 들어가면 섬 내에 있는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한식당, 레스토랑 등 메뉴가 다양하다. 곳곳에 아기자기한 카페도 있다. 남이섬 명물 눈사람빵도 맛볼 수 있다. 정관루에서 숙박을 한다면 식당이 닫는 시간을 잘 체크해야 한다. 자칫했다가 저녁을 굶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야식을 원한다면 섬 중간에 있는 편의점에서 미리 구입하길 추천한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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