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탄광의 아날로그 간직한 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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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탄광의 아날로그 간직한 태백

광부의 삶 엿볼 수 있는 상가…호시절 담은 예술작품 가득

  • 승인 2015-12-03 13:54
  • 신문게재 2015-12-04 9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주말여행]태백 철암탄광역사촌

남겨야 하나, 부수어야 하나 논쟁하는 사이 한국 근현대사의 유구들이 무수히 사라져 갔다.
가까운 역사를 지우는 작업이 계속된다면 다음 세대는 박물관의 이미지 자료나 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곳 철암 까치발 건물들은 근대 탄광 지역 생활사의 흔적으로 소중히 기억될 것이다.
-철암탄광역사촌 앞 기념비에서

연탄은 지금의 가스만큼 쓰는 집이 흔했고, 연탄을 만들 석탄을 캐는 마을엔 돈이 흔했다. 석탄은 배고픔을 몰랐다. 탄광촌은 동네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이 있을 만큼 번성했다. 하지만 쇠락의 연기는 그때 이미 피어올랐다. 2013년 연탄 사용률이 1%대로 떨어질 때까지 수많은 탄광이 문을 닫았다. 연탄의 세상은 그만큼 좁아졌다. 탄광은 무엇이 됐으며 광부들의 삶은 어떻게 됐을까. 국내 최초 무연탄 선탄시설인 태백 철암역두 앞 '철암탄광역사촌'은 그 물음의 답이 되어주었다.

태백 철암역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1935년, 삼척탄광에서 캐낸 광물을 정제하는 선탄시설에서 시작됐다. 1960~1970년대 전성기 인구는 4만 5000여명. '검은 노다지'를 찾아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사람은 몰리는데 몸 누일 곳 적으니 하천 바닥에 까치발(지지대)을 세우고 그 위에 방을 넓혔다. 잘 살던 시절의 유산 까치발은 이 동네의 상징이다. 호황은 30년간 이어지고 끝났다. 국내 최대 민영탄광이었던 강원탄광이 1993년 문을 닫고 3천여명이 폐광촌에 남았다. 다방도, 치킨집도, 중국집도 연탄을 뗄 일이 없어졌다.

2014년 2월. 태백시는 철암천변에 남은 건물 11채를 외부는 그대로, 내부는 전시관으로 고쳐 탄광역사촌을 만들었다. 그전까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안성기와 박중훈이 주먹을 날리는 장면의 촬영지로 알려졌던 철암동은 옛 탄광촌을 엿볼 수 있는 생활사 여행지로 시동을 걸었다.

'무엇이 허물어지고 무엇이 남는가… 기억의 높여짐은 오늘 뒤에 서 있다' 역 벽면부터 작품이다. 까치발 집, 곡괭이 등 탄광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진 동그란 판에 짧은 글들이 쓰여져 있다.

도로 건너 역사촌이 낯익다. 봉화식당, 진주성, 한양다방, 그리고 페리카나. 흔한 드라마 속 흔한 동네 모습을 하고 있는 오른쪽 끝편의 치킨집이 관광안내소다. 여기서부터 옆 가게들로 옮겨가면서 탄광의 생활사와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데, 관광해설사가 전시관으로 가라고 말하지 않고 “호남슈퍼부터 보고 가세요”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치킨은 팔지 않는다.

옆집 호남슈퍼는 고기 구워 먹던 광부들과 시장을 재현한 디오라마와 탄광 안에서 찍은 사진들로 지하부터 지상2층까지 가득하다. 높지 않지만 3층 옥상 전망대도 있다. 경치를 감상한다기보다 탄광 쪽을 살피며 집에 와야 할 사람에게 사고는 없는지, 아래 골목 누구네 얘가 어딜 가는지, 걱정을 덜고 싶어 올랐을 것 같은 곳이다. 그 옆 중국집 진주성에서는 학생들이 미술체험을 하고 있었다. 봉화식당과 한양다방은 예술이 주제다. 입구에 떡하니 '유흥업소'라는 옛 안내판이 붙어있지만 음주가무가 아닌 작품과 '즐겁게 노는' 곳이다. 석탄과 사람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 구멍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 태백산 설경이 보이는 작품의 방, 까치발 집 모형 안쪽으로 익살스러운 시대만화를 넣은 전시물이 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와보니 얼기설기 복작복작. 뻥 뚫린 까치발 집에 세월의 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건물 뒤편 도랑을 건너면 광부 동상이 손을 흔들고 있는데, 시선이 닿는 곳에는 아기를 업은 여인이 집 앞에 서서 손을 흔든다. 잘 다녀올게, 인사를 마친 동상 옆에는 곡괭이를 들고 일하는 동상, 장화를 뒤집어 돌을 빼내며 쉬고 있는 동상이 서 있다.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 할 시간과 가족의 모습이 고단해보였다. 경험하지 못한 과거라고 해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떤 것을 보는 건, 창문 밖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 마을 골목길에 들어 선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그리움에 젖었다.

다시 돌아온 역 앞. 처음에 만났던 글이 비를 맞고 있었다. '저기 저거, 검은 땅 위에 풀 돋아난다' 바닥을 뚫고 자란 나무와 잎 그림과 함께 마지막 구절이 쓰여있다. 철암역은 관광객으로 가득찼고 그 일부는 자연스레 역사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치발집들 사이에서 웃음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가는길=대전역에서 오전 8시 반 기차를 타고 제천역에 도착한 뒤, 11시 9분에 출발하는 철암행 O-트레인으로 갈아타면 된다. 승용차로는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와 평택제천고속도로 등을 거쳐 3시간 50분 정도 소요된다.

▲가볼만한 곳=탄광의 역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석탄박물관을 추천한다. 인근 태백고원자연휴양림은 해발 700m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데 비수기 평일 최소 3만원부터 예약할 수 있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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