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역사를 지우는 작업이 계속된다면 다음 세대는 박물관의 이미지 자료나 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곳 철암 까치발 건물들은 근대 탄광 지역 생활사의 흔적으로 소중히 기억될 것이다.
-철암탄광역사촌 앞 기념비에서
연탄은 지금의 가스만큼 쓰는 집이 흔했고, 연탄을 만들 석탄을 캐는 마을엔 돈이 흔했다. 석탄은 배고픔을 몰랐다. 탄광촌은 동네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이 있을 만큼 번성했다. 하지만 쇠락의 연기는 그때 이미 피어올랐다. 2013년 연탄 사용률이 1%대로 떨어질 때까지 수많은 탄광이 문을 닫았다. 연탄의 세상은 그만큼 좁아졌다. 탄광은 무엇이 됐으며 광부들의 삶은 어떻게 됐을까. 국내 최초 무연탄 선탄시설인 태백 철암역두 앞 '철암탄광역사촌'은 그 물음의 답이 되어주었다.
태백 철암역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1935년, 삼척탄광에서 캐낸 광물을 정제하는 선탄시설에서 시작됐다. 1960~1970년대 전성기 인구는 4만 5000여명. '검은 노다지'를 찾아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사람은 몰리는데 몸 누일 곳 적으니 하천 바닥에 까치발(지지대)을 세우고 그 위에 방을 넓혔다. 잘 살던 시절의 유산 까치발은 이 동네의 상징이다. 호황은 30년간 이어지고 끝났다. 국내 최대 민영탄광이었던 강원탄광이 1993년 문을 닫고 3천여명이 폐광촌에 남았다. 다방도, 치킨집도, 중국집도 연탄을 뗄 일이 없어졌다.
'무엇이 허물어지고 무엇이 남는가… 기억의 높여짐은 오늘 뒤에 서 있다' 역 벽면부터 작품이다. 까치발 집, 곡괭이 등 탄광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진 동그란 판에 짧은 글들이 쓰여져 있다.
도로 건너 역사촌이 낯익다. 봉화식당, 진주성, 한양다방, 그리고 페리카나. 흔한 드라마 속 흔한 동네 모습을 하고 있는 오른쪽 끝편의 치킨집이 관광안내소다. 여기서부터 옆 가게들로 옮겨가면서 탄광의 생활사와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데, 관광해설사가 전시관으로 가라고 말하지 않고 “호남슈퍼부터 보고 가세요”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치킨은 팔지 않는다.
전시를 다 보고 나와보니 얼기설기 복작복작. 뻥 뚫린 까치발 집에 세월의 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건물 뒤편 도랑을 건너면 광부 동상이 손을 흔들고 있는데, 시선이 닿는 곳에는 아기를 업은 여인이 집 앞에 서서 손을 흔든다. 잘 다녀올게, 인사를 마친 동상 옆에는 곡괭이를 들고 일하는 동상, 장화를 뒤집어 돌을 빼내며 쉬고 있는 동상이 서 있다.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 할 시간과 가족의 모습이 고단해보였다. 경험하지 못한 과거라고 해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떤 것을 보는 건, 창문 밖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 마을 골목길에 들어 선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그리움에 젖었다.
▲가는길=대전역에서 오전 8시 반 기차를 타고 제천역에 도착한 뒤, 11시 9분에 출발하는 철암행 O-트레인으로 갈아타면 된다. 승용차로는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와 평택제천고속도로 등을 거쳐 3시간 50분 정도 소요된다.
▲가볼만한 곳=탄광의 역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석탄박물관을 추천한다. 인근 태백고원자연휴양림은 해발 700m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데 비수기 평일 최소 3만원부터 예약할 수 있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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