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대전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이성희 기자 token77@ |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긴급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몸에서 열이 나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으며,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겼으나 상태가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오 원장이 설명했다.올해 88세로, 고령인 데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종종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왔으며, 그때마다 며칠씩 입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입원하기 전에도 이달 10일 검진 차 병원을 찾아 17일까지 입원한 뒤 퇴원했다.
눈을 감은 그의 서거일은 공교롭게도 18년전 1997년 11월 22일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고 발표한 ‘통한’의 그날과 겹치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 현대 정치를 양분해 이끌어왔던 김대중, 김영삼으로 상징되는 양김 시대는 역사 속으로 묻히게 됐다.
1927년 경남 거제 출생으로 장택상 국회부의장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김 전 대통령은 1954년 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만 25세에 역대 최연소 당선, 이후 9선(5,6,7,8,9,10,13,14대)을 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야당 당수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에 맞서다 1979년 신민당 총재로 재선출된 1979년 ‘YH무역 여공 신민당사 농성’ 사건 때 경찰에 강제 연행돼 총재직이 정지된 뒤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되는 고초를 겪었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면서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 선언,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추대돼 재야인사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2년 당 총재로 대선에 출마해 14대 대통령에 당선돼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자신의 신조처럼 32년 간의 군사 정권 시절에 마침표를 찍고 문민정부를 열었다.
재임 기간 중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하나회 척결, 군 내 사조직 해체,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수사 등의 성과를 냈다.
그러나 1997년에는 외환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아들과 친인척 비리로 업적이 얼룩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딸 혜영(63), 혜정(61), 혜숙(54)씨, 아들 은철(59), 현철(56)씨 등 2남 3녀가 있다.
서울=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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