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꾹'… 서천의 가을을 찍고 추억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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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꾹'… 서천의 가을을 찍고 추억을 찍다

파도 내려다보는 스카이워크선 바닷바람 맞으며 하늘걷는 기분 소곡주 축제장의 술과 파전엔 따뜻한 정과 웃음이 고스란히

  • 승인 2015-11-12 15:02
  • 신문게재 2015-11-13 9면
  • 박희준 기자박희준 기자
[주말여행] 서천 스탬프투어

▲ 신성리 갈대밭
▲ 신성리 갈대밭
집에 두고 온 선인장이 지금쯤 어떻게 되지는 않았을지 조금 걱정이 된다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쩌면 여행인지 모른다.
낯선 사람들의 시선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그 시선으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김동영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중에서


어릴 적,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였을 것이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마루에 누워 적당히 부는 바람과 작게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코를 감싸는 푸근한 할머니 냄새를 맡으면 눈이 스르르 감기곤 했었다. 잔치라도 있는 날이면 온 동네 마을사람이 모여 고깃국을 끓이고 커다란 솥에 밥을 해먹던 풍경들, 웃음소리. 넉넉하고 따사로웠다. 사람에 치이고 일정이 빡빡해 여유가 없을 땐 눈을 감으며 종종 시골을 떠올리곤 한다. 낯선 사람이 낯설지 않은 곳. 모두가 가족이고 식구인 곳. 이따금씩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손등이 그리웠다.

▲ 문헌서원
▲ 문헌서원
이번 서천 여행은 초행길이지만 여행지에서도 이런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출발했다. 마침 스탬프 투어 기간이어서 서천을 두루두루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짧은 휴가를 내고 떠나온 터라 마음이 홀가분했다. 서천에 도착하자마자 길치 여행자인 나에게 필수인 관광안내소(마서면 장산로 855번길 2)로 곧장 향했다.

▲발걸음이 만드는 지도=길치는 여행의 걸림돌이자 해결책이다. 헤매다가 또 다른 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잠시 쉬었다가 떠나기도 하는 것이다.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지도를 손에 꼭 쥐고 길을 나섰을 때 막막했지만 12개의 스탬프를 채워 나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스탬프 투어지는 1. 마량 동백나무 숲 2. 춘장대 해수욕장 3. 서천식물예술원 4. 문헌서원 5. 한산모시관 6. 이상재선생 생가지 7. 신성리 갈대밭 8. 조류생태전시관·금강하구철새도래지 9. 국립생태원 10. 국립해양생물자원관 11. 장항 스카이워크 12. 서천특화시장으로 나눠져 있다. 가는 곳마다 스탬프를 찍어주는 곳에 들러 찍으면 된다.

▲ 국립해양생물자원관
▲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관광안내소가 위치한 금강하굿둑에서 처음 들른 곳은 조금 떨어진 장항 스카이워크다. 높다란 다리위에서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데 바닥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해송들을 보면 아찔하다. 다리 가장 끝에는 바닥이 투명해 파도를 볼 수 있는데, 상당한 담력(?)을 요한다. 왕복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지만 잠시 들러 하늘을 걷는 기분을 느끼며 바닷바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스카이워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있다. 이곳은 말 그대로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국가기관인데, 연구한 표본이나 자료들을 전시하고 관광객들이 관람할 수 있게 만든 곳이다. 들어가면 30분 간격으로 친절한 해설사의 안내도 받을 수 있고 박제된 바다 속 생물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까지 생태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을 데려오면 참 좋아할 것이다.

▲ 한산 소곡주
▲ 한산 소곡주
▲취할 때까지 취한 게 아니다=바닷바람을 쐬며 답답했던 가슴을 뚫고 평소 관심 가졌던 바다 생물도 구경하고 나니 짧아진 해 탓에 금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한산 소곡주 축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축제장은 기대했던 것보다 소박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축제를 운영하는 사람도 축제를 즐기는 사람도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뿐이었다. 민망함에 축제 입구 쪽에 있는 소곡주 품평회장에 들렀다. 서천에서 직접 술을 빚는 장인들의 상품을 모아놓고 시음할 수 있는 곳. 단돈 1000원에 조그마한 잔을 사서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소곡주를 홀짝홀짝 마시니 알딸딸해졌다. 걸쭉하고 깊은 맛이 났다. 밖에 설치된 주무대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노래를 듣기 위해 모인 어르신들로 가득했다. 의자에 앉아 트로트를 듣다 무대 건너편에 설치된 음식을 파는 천막에 들어갔다. 해물파전을 시키고 오랜만에 만난 듯한 어르신들의 밝은 웃음소리를 안주삼아 한 잔 더 마셨다. 취기가 오르자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풍경이 겹쳐졌다. 서천 각지에서 모였지만 서로 합심해서 운영하는 축제, 작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꺄르르 웃는 소녀 같은 할머니들, 그리고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정과 따뜻함이 해물파전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했다.

▲사람 냄새나는 갈대=아침에 눈을 뜨니 몽롱했다. '앉은뱅이 술', 소곡주를 너무 과음했나보다. 서천에 있는 식당들은 거의 해산물 위주였다. 뜨끈한 바지락칼국수 국물로 해장을 하고 이번엔 신성리갈대밭으로 갔다. 갈대밭에서도 축제가 한창이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은 갈대밭에 들어오니 축제장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인지 철저히 혼자 남겨졌다. 낯설지만 길을 헤매도 곳곳에 숨어있는 안내판이 친절히 길을 알려주는 곳. 바람 부는 갈대밭에 서서 갈대 부딪히는 '사그락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눈을 감고 벤치에 앉아 있다보니 문득 갈대들이 사람처럼 느껴졌다. 우리네 사는 것도 모진 바람을 이겨내는 갈대처럼 이렇게 살 비비고 부딪히며 서로를 지탱해주는 것이 힘든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이 아닐까. 신성리 갈대밭을 둘러보고 인근에 있는 한산모시관 등 다른 곳도 잠시 들러 8개의 스탬프를 완성했다. 다시 관광안내소로 가니 서천 특산품을 살 수 있는 상품권과 에코백을 선물로 받았다. 갈대같이 흔들리는 가장들, 청춘들, 외로운 이들. 모두 서천에 들렀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가는 길, 어르신들의 따뜻한 웃음과 정성으로 빚은 소곡주, 속 달래주는 해산물의 맛과 소소한 추억들을 한아름 안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 장항 스카이워크
▲ 장항 스카이워크
▲가는길=대전에서 승용차를 타고가면 유성IC를 타고 남세종 IC를 경유해 당진영덕고속도로, 서천공주고속도로, 서해안 고속도로를 지나 동서천분기점에서 나온다. 서천IC 삼거리에서 서천 방향으로 들어가면 도착한다. 버스는 대전복합터미널에서 서천시외버스정류장까지 부여와 공주를 경유하는 것이 하루 3대 있으며 대전서부터미널에서 가는 직행버스는 하루 4대 있다. 약 2시간정도 걸린다.

▲먹거리=서천은 길목마다 바지락칼국수를 파는 집이 흔하며 해물탕, 아구탕, 복찜 등 다양하다. 금강하굿둑, 장항, 특화시장, 홍원항, 판교 등 음식특화거리를 가면 식당이 밀집되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우리식당(장항읍 장서로 29번길 42)에 아구탕이다. 시원한 국물에 정갈한 반찬이 나오고 가격도 적당하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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