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성리 갈대밭 |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쩌면 여행인지 모른다.
낯선 사람들의 시선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그 시선으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김동영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중에서
어릴 적,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였을 것이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마루에 누워 적당히 부는 바람과 작게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코를 감싸는 푸근한 할머니 냄새를 맡으면 눈이 스르르 감기곤 했었다. 잔치라도 있는 날이면 온 동네 마을사람이 모여 고깃국을 끓이고 커다란 솥에 밥을 해먹던 풍경들, 웃음소리. 넉넉하고 따사로웠다. 사람에 치이고 일정이 빡빡해 여유가 없을 땐 눈을 감으며 종종 시골을 떠올리곤 한다. 낯선 사람이 낯설지 않은 곳. 모두가 가족이고 식구인 곳. 이따금씩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손등이 그리웠다.
▲ 문헌서원 |
▲발걸음이 만드는 지도=길치는 여행의 걸림돌이자 해결책이다. 헤매다가 또 다른 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잠시 쉬었다가 떠나기도 하는 것이다.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지도를 손에 꼭 쥐고 길을 나섰을 때 막막했지만 12개의 스탬프를 채워 나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스탬프 투어지는 1. 마량 동백나무 숲 2. 춘장대 해수욕장 3. 서천식물예술원 4. 문헌서원 5. 한산모시관 6. 이상재선생 생가지 7. 신성리 갈대밭 8. 조류생태전시관·금강하구철새도래지 9. 국립생태원 10. 국립해양생물자원관 11. 장항 스카이워크 12. 서천특화시장으로 나눠져 있다. 가는 곳마다 스탬프를 찍어주는 곳에 들러 찍으면 된다.
▲ 국립해양생물자원관 |
스카이워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있다. 이곳은 말 그대로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국가기관인데, 연구한 표본이나 자료들을 전시하고 관광객들이 관람할 수 있게 만든 곳이다. 들어가면 30분 간격으로 친절한 해설사의 안내도 받을 수 있고 박제된 바다 속 생물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까지 생태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을 데려오면 참 좋아할 것이다.
▲ 한산 소곡주 |
▲사람 냄새나는 갈대=아침에 눈을 뜨니 몽롱했다. '앉은뱅이 술', 소곡주를 너무 과음했나보다. 서천에 있는 식당들은 거의 해산물 위주였다. 뜨끈한 바지락칼국수 국물로 해장을 하고 이번엔 신성리갈대밭으로 갔다. 갈대밭에서도 축제가 한창이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은 갈대밭에 들어오니 축제장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인지 철저히 혼자 남겨졌다. 낯설지만 길을 헤매도 곳곳에 숨어있는 안내판이 친절히 길을 알려주는 곳. 바람 부는 갈대밭에 서서 갈대 부딪히는 '사그락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눈을 감고 벤치에 앉아 있다보니 문득 갈대들이 사람처럼 느껴졌다. 우리네 사는 것도 모진 바람을 이겨내는 갈대처럼 이렇게 살 비비고 부딪히며 서로를 지탱해주는 것이 힘든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이 아닐까. 신성리 갈대밭을 둘러보고 인근에 있는 한산모시관 등 다른 곳도 잠시 들러 8개의 스탬프를 완성했다. 다시 관광안내소로 가니 서천 특산품을 살 수 있는 상품권과 에코백을 선물로 받았다. 갈대같이 흔들리는 가장들, 청춘들, 외로운 이들. 모두 서천에 들렀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가는 길, 어르신들의 따뜻한 웃음과 정성으로 빚은 소곡주, 속 달래주는 해산물의 맛과 소소한 추억들을 한아름 안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 장항 스카이워크 |
▲먹거리=서천은 길목마다 바지락칼국수를 파는 집이 흔하며 해물탕, 아구탕, 복찜 등 다양하다. 금강하굿둑, 장항, 특화시장, 홍원항, 판교 등 음식특화거리를 가면 식당이 밀집되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우리식당(장항읍 장서로 29번길 42)에 아구탕이다. 시원한 국물에 정갈한 반찬이 나오고 가격도 적당하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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