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이 마을과 중앙동을 왕래하는 갯배 |
속초는 실향민이 많이 산다. 속칭 아바이 마을엔 현재 주민의 60%가 실향민이다. 이복순(84)할머니는 1950년 흥남철수 당시 '메러디스'호를 타고 피란 온 분이다. 빈몸으로 와 막막하고 고생이 말이 아니었단다. “미국 군인이 무기 버리고 우리같은 민간인 실어와서 우리가 이렇게 살았어.” 허리가 아파 제대로 걷는 게 힘들다지만 목소리만은 우렁우렁 힘이 넘친다. 전쟁 전 흥남비료공장 안 병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는 할머니는 거제포로수용소 내 미군의사가 있는 병원서 3년간 일했다고 자랑했다.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29살에 할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자마자 속초로 오게 됐다고 한다. 속초 사는 이모가 명태가 잘 잡혀 벌이가 괜찮다며 오라 해서 왔는데 아바이 마을이 하꼬방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할아버지가 술도 안먹고 착실했지. 친척이 잡아온 명태를 집에서 말려 팔고 명란·창난젓도 팔았어. 근데 우린 장사할 무기(수단)가 없어 돈을 못 벌었어.”
아바이 마을에는 '갯배'라는 명물이 있다. 자연석호인 청초호와 동해바다를 잇는 물길을 건널 수 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무동력선이다. 도로를 이용해 아바이마을과 중앙동을 왕래하려면 30여분 걸리지만 갯배를 타면 단돈 300원으로 5분도 안걸린다. 사람이 모이면 바로 출발하며 끝과 끝이 연결된 밧줄을 잡아당기며 운행해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중앙동 수로변엔 식당과 정박한 고깃배가 어우러져 유럽 어느 도시의 포구를 걷는 것 같아 여행의 기쁨에 들뜨게 된다. 노천카페에서 웃음을 터트리며 차 마시는 청춘남녀, 한 떼의 중년 관광객들, 왁자함 속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노쇠한 갯배 뱃사공. 그리고 저 멀리 동해바다와 맞닿은 해변의 하늘.
다음날 아침 일찍 중앙동 포구에 나왔을 때 탄성을 질렀다. 흰 비늘을 반짝이며 쉴새없이 몸을 뒤척이는 싱싱한 바다와 끼룩거리는 갈매기들에 눈 앞이 아찔했다. 밤새 잡은 고기를 경매에 부치고 그물을 터는 어부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이것저것 쫑알대며 묻는 내가 귀찮을 법도 한데 늙은 어부들은 어젯밤에 그물에 걸린 자연산 새우라며 먹어보라고 종이컵에 소주도 따라준다. 요즘은 문어, 가자미, 대구가 많이 잡히지만 명태는 이제 씨가 말라 볼 수가 없단다. 근데 왜 소주가 사이다 맛이 날까?
거친 바다를 품고 주어진 숙명에 내동댕이쳐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 이산의 설움과 타향살이의 고단함에 하루하루가 전쟁같은 삶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여정은 헛되지 않았다. 거기엔 진한 눈물과 웃음이 버무려진 한편의 드라마가 있었다.
▲가는길=대전복합터미널서 강릉까지 가서 속초가는 버스를 갈아탄다. 속초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으나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자주 없다.
글=우난순 기자
사진제공=속초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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