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우 영창단조공업 대표 |
나는 저가의 중국산 망치와 고급이미지의 일본산 망치 속에서 꿋꿋이 3대째 대한민국 망치로 맞서고 있는 제조업체 대표다.
12년 전 본격적으로 회사에서 일하게 됐을 때, 망치의 주력 제품은 빠루망치와 냉가망치였다. 망치는 알겠는데 '빠루'가 무슨 말이고 '냉가'가 무슨 말인지 나에겐 너무 생소한 단어들이었다. 빠루라는 말은 우리나라 말로 '노루발못뽑기'였고, 냉가라는 말 또한 일본말로 구운 벽돌이라는 뜻으로 빠루망치는 '장도리'라 부르고, 냉가망치는 '벽돌망치'라고 명칭을 변경해야 했다. 이 외에도 야스리는 '줄', 바라하시는 '철거' 등 현재 건설현장에 쓰이는 용어나 각종 공구의 명칭에는 일본 언어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있다.
우리 회사는 이러한 용어 문제를 타파하고자 냉가망치를 벽돌망치라 명명해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계속된 거래처의 주문은 냉가망치였고, 신규 직원은 냉가망치가 벽돌망치라는 것을 인식 못 해 주문이 오더라도 없다고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결국은 자사도 냉가망치와 벽돌망치라는 이름을 같이 사용하게 됐다. 한 번에 바꾸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제품이 유명해지면 제품명도 따라오게 되듯이 새로운 제품의 명칭에는 조금씩 한글화로 명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현재 건설 공구를 제작하는 업체로서 용어를 한글화하는데 한발짝 한발짝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또한, 건설현장에선 아직도 일본 공구하면 품질이 우수한 제품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구 제작 기술도 역사나 능력이 일본 제품에 뒤지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고구려가 건국되고 그 영역을 중국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을 때는 전략과 전술도 뛰어났지만 우수한 철 다루는 기술이 그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삼성이 일본 기술을 벤치마킹해 일본을 기술을 뛰어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일본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많은 업체가 어렵게 공구를 제작하는 것보다 일본 제품이나 중국산 저가 제품을 수입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있고, 그로 인해 많은 공구 제조업체들은 문을 닫게 됐다. 현재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대장간의 명맥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필자의 제조업체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예로 신제품을 개발하면 중국에 가서 모방된 공구를 수입해 저가로 판매되고 있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저가로 시장에 판매함으로써 제품 개발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제품에 대한 품질을 높여 망치 업계 최초로 '수출인증자'를 획득해 루마니아로 망치를 수출했다. 또, 호주의 가장 큰 공구 유통회사인 'Burning Ware House'에서 제품에 대해 호의를 보여 수출 계약도 80% 이상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제품에 대한 품질뿐만 아니라 PISDIC이라는 '디자인 개발 사업'을 통해 디자인을 융복합해 단순히 망치가 '못'만 박는 것이 아닌, 기존 틀에서 젊은 감각의 디자인을 덧붙여 멋있는 공구를 만들 수 있었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기억하면서 나 자신의 안위와 행복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고 자부심을 느끼며 국위선양을 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독립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망치를 만들고 있지만 스스로 중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제품들과 경쟁하는 국가대표라고 생각한다. 우수한 제품을 개발해 전 세계로 수출하게 되면 뛰어난 우리나라의 수공구 제조 기술을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안중근의사의 어록 중에 '인무원려 난성대업'이라는 말이 있다. 멀리 보고 그 길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작은 움직임이 대한민국 공구 독립운동의 시작이며. 독립 운동가들이 헌신과 희생에 우리 후손들이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건우 영창단조공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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