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 흘린 청춘의 눈물 서린 '남해 독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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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흘린 청춘의 눈물 서린 '남해 독일마을'

타국 연상케 하는 수평선 옆 마을 풍경에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발자취 뱃고동 울렸을 바닷가에선 지하갱도 땀방울이 은빛 모래위로 씻기는 듯

  • 승인 2015-10-15 14:26
  • 신문게재 2015-10-16 9면
  • 박희준 기자박희준 기자
[주말여행] 경남 남해 독일마을

여행을 기록한다는 것은 내가 밟은 땅의 지도를 문신으로 새긴 인형을 갖게 되는 일이다. 여러 객지들 가운데 주로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은 땅이 끝나는 곳이었다. 여행은 내가 모르는 땅에서 적막과 나누는 비밀스러운 은어(隱語)다. 객지에서는 누구나 혼자다. 누구나 여행을 떠나면서 혼자가 되지만, 떠나기 전부터 혼자였던 경우가 많다. -이이체 「당신을 헤매다」 중에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달리고 싶은 날이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도 한몫했지만 남해라는 곳은 처음이라 더 설렜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기다려야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초행길은 언제나 낯설고 멀게만 느껴진다. 최근에 파독광부와 간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국제시장을 본 적이 있다. 또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도 소개가 됐었던 독일마을. 이번 여행의 목적지다. 이름만 들어서는 고급 주택이 있는 마을과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이 반겨줄 것 같지만 이곳은 과거 어려웠던 한국의 경제를 일으켰던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창밖을 보니 어느덧 삼천포 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삼천포로 빠진 버스. 여행은 이렇게 가끔 삼천포로 빠지는 게 묘미가 아닐까.

▲머나 먼 타지에서=버스를 한참 타고 왔는데도 또 버스를 타야했다. 멀미가 조금 났지만 창 밖에 펼쳐진 바다를 보며 달랬다. 매번 여행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사전 정보를 많이 알고 가는 것보다는 교통편과 여행지의 명물이 무엇인지만 알고 가는 여행이 더 풍요롭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큰 오산이다. 여행은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만나는 자연과 사람과의 교감이다. 늦은 점심밥을 먹기 위해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가천다랭이마을에 잠시 들렀다. 남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멸치쌈밥을 주문하고 야외 식탁에 앉아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자니 정말 먼 나라에 온 기분이었다. 타국에서의 식사는 이런 기분일까. 쌈밥의 짭조름한 멸치가 통통해 한 그릇 뚝딱 비웠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밀려왔다. 아직은 혼자 밥 먹는 일이 서툰가보다.

▲청춘, 독일아리랑이 되어=남해는 교통편이 불편하다. 버스 배차간격은 1시간의 1대 꼴. 방금 먹은 밥이 다 소화될 정도로 오랜 시간 정류장에 서 있다 보니 독일마을로 가는 버스가 왔다. 모두가 알아야 할 의무는 없지만 우리 역사의 일부가 그대로 녹아 있는 곳. 독일마을 초입부에는 남해 파독전시관이 있다. 파독전시관은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의 업을 기리고 고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남해 독일마을에서 보내고 있는 경제 역군들의 삶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건립된 곳. 넓은 부지에 비해 전시관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 전시된 실제 사용했던 수첩과 장비들, 생생한 그때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보니 머나 먼 이국땅에서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쓸쓸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마음 한쪽이 저릿저릿했다. 오직 가족과 나라만을 위해 몸 바친 한국인들이 새삼 자랑스러웠다. 전시관을 나오니 독일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독일에서 살던 실제 집들과 똑같이 꾸며 놓은 마을을 보니 그들의 젊은 날의 수고로움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곳곳에 독일맥주와 소시지 등을 판매하는 카페테리아들이 이어져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집들과 독일국기와 태극기가 펄럭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좋지만 독일마을 둘러보기 전에 파독전시관에 잠시나마 들러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의 발자취를 기억하며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해안선 너머=독일마을에서 소시지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푸니 시간이 애매했다. 해가 지기 전 잠시 해변에 다녀오기로 했다. 남해에서도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상주은모래비치는 백사장 길이 2㎞에 달하는 넓은 해수욕장이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그런지 해변에는 관광객이 몇 명 없었다.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고운 모래. 자연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어 신발을 벗어들고 긴 백사장을 정처 없이 걸었다. 수평선을 따라 떠 있는 섬들. 독일마을에서 오래 머물며 여운이 남아서일까. 독일에서 귀국하는 커다란 배의 고동 소리 같은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멀고 먼 이국땅 지하 1200m 갱도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청춘을 바친 그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떠났지만 한국인 특유의 친절과 성실함으로 타지에서 적응해야만 했던 그들의 땀과 눈물이 파도에 천천히 씻기는 듯했다.

▲가는길=대전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면 통영대전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진주시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서 사천 IC나 진교 IC로 빠져나오면 된다. 시간은 넉넉잡아 3시간 30분~4시간이 걸린다. 대중교통으로는 남해에는 기차가 다니지 않으므로 시외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서울~남해 버스 중 대전을 경유하는 버스가 있다. 오전 10시, 오후 1시 30분, 오후 6시 30분 하루 세 대 뿐이므로 시간을 잘 체크해야 한다.

▲먹거리=남해는 멸치쌈밥이 유명하다. 남해를 가면 꼭 들린다는 가천 다랭이마을(경남 남해군 남면 남면로 679번길 7-3)에 가면 '농부맛집' 식당의 멸치쌈밥<사진>이 유명하다. 정갈한 반찬과 구수한 멸치의 맛, 식당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일품이다. 사장님이 직접 주조했다는 막걸리는 시중의 막걸리와 다르게 뒷맛이 깔끔했다. 가장 오래 머문 독일마을(경남 남해군 삼동면 독일로 92)에서는 독일 전통 소시지와 맥주를 파는 곳이 군데군데 있다. 수제로 만들어 남다른 풍미를 자랑한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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