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년 평생 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었다는 서산 갈마리 농민 대표 이종선 서산AB지구경작자연합회장이 마르고 덜 자란 채 잿빛으로 변한 벼를 바라보며 망연자실 하고있다. |
서산지역 1000만평(3305만7851.2㎡) 논에 심은 벼가 잿빛으로 변했다. 올 수확은 하나 마나인 상황이고, 이대로라면 내년 농사는 짓지도 못할 처지다. 지난 13일 오후 찾은 서산시 부석면 갈마리의 넓은 평야는 마치 덜 자란 갈대밭 같았다.
이맘때면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들떠 있을 농부들이지만, 이곳은 한숨 쉬는 농부들밖에 찾을 수 없다. “하이고….” 농부들이나 취재진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재앙이었다.
이곳은 B지구라고 불린다. 과거 현대 정주영 회장이 바다를 막아 만든 AB지구 중 한쪽 땅이다. 그런데 지금 벼가 자라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아 지역에 물이 적어 상대적으로 염분이 높아진 염해 피해다. 한 마디로 가뭄피해. 농부들은 망연자실했다.
이종선 서산AB지구경작자연합회장은 “이 시기면 들이 황금빛이 나야 하는데 검고 잿빛이 들었다”고 했다.
이 지역은 최근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왔었지만, 뚜렷한 대책을 내놓았다는 소식은 농민 누구하나 접하지 못했다.
이 장관을 비롯해 이완섭 시장과 지역구 김제식 국회의원, 맹정호 도의원 등 정치·행정가들이 다녀갔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아직 없다.
유독 이 지역을 찾지 않은 도백에게 모든 원망은 돌아갔다.
이 회장과 마을 이장 등 농민들은 “서산 바로 옆 홍성에 사는 안희정 지사가 얼굴도 안 비치는 것이 말이 되느냐? 한번이라도 와야지. 그게 도리”라며 “농민들을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3농혁신은 왜 하나, 말로만 하지 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사 오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데 오지 않으니 주민들 원성이 자자하다”며 “500여농가가 죽을 지경이니 지사가 중앙정부에 건의 좀 해 달라. 우린 포기 상태다”라고 하소연했다.
재해보험도 문제다. 이종선 씨는 올해 6000평의 논에서 40만원의 보상을 받을 것 같다. 보통 이 구역 수확량이 매년 16t 정도인데 유일 보험사인 농협보험에선 전국 평균인 12t 정도만 수확량으로 인정한다. 여기에 피해액의 20%는 농민이 감수해야만 하는 시스템이다.
게다가 수확할 수 있는 나머지 쌀은 마르고 덜 자라 상품성이 없다.
이 씨는 6000평 한 구간에 200만원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160만원의 수확비용을 내야만 한다. 농민들은 농촌진흥공사에 벼 품종에 대한 수확량도 나오며 그 기준을 활용해 보상하는 방안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 이 지역 염도는 3.7 정도다. 3.0 이상 염도의 논은 벼가 자라기 어렵다.
이 씨는 “농사를 지은 30년간을 비롯해 평생 이런 재앙은 처음”이라고 했다.
농민들이 화나는 건 정부의 무책임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B지구와 붙은 A지구 담수호인 간월호는 서산의 생활하수와 홍성 와룡천의 물도 흘러들어온다. 때문에 물이 차고 넘쳐 겨울이면 바다로 흘려보내곤 한다는 주민들의 설명이다. A지구는 농어촌공사가 관리하고 B지구는 현대가 관리한다. 농민들은 농어촌공사가 B지구의 관리권까지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서다. 특히 간월호 활용방안은 당장 해야지 내년 착공은 늦다는 주민들의 지적이다.
농민들은 “수자원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옆 A지구에 물이 넘치는 데도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자연재해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나 보험사도 이해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대로 물이 부족해 주변 물의 염도가 높으면 내년엔 모내기조차 불가능하다.
내내 담담하게, 때로는 취재진에 친절을 베풀려는 듯 웃음을 보이기도 했던 농민들은 취재내용을 정리하려는 기자의 마지막 확인절차에 눈시울이 불거졌다.
“그렇지. 바로 그거유. 아이고 속이 다 시원하네. 도지사가 와서 기자처럼 그렇게 우리 맴좀 알고 가라는 거유.”
서산=임붕순·유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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