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으로부터 세월은 흘러 그는 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함은 물론 뇌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형진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다. 그는 지난 2000년 3월 대전성모병원 신경외과로 부임한 이래 15년 동안 뇌혈관질환 분야를 책임져왔다. 주로 뇌졸중, 뇌출혈, 뇌경색 환자들과 울고 웃으며, 동고동락했다. 대전성모병원 신경외과는 담당 과장에서부터 진료 교수까지 이 교수 부임 이래 단 한 번의 인사이동 없이 함께해온 드림팀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뇌혈관질환 치료에 대해 설명할 땐 빠른 진단과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환자들로부터 항상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동료들로부터 신뢰받는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의 삶과 뇌혈관질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여러 분야 중 신경외과를 꼭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학교 다닐 때부터 신경, 즉 뇌에 관심이 많았다. 인턴생활 도중 선배들을 따라 보조로 신경외과 수술실에 처음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숨을 쉬는 뇌의 모습을 봤다. 뇌가 사람 심장과 같이 숨을 쉬고 있는 게 아닌가. 쇼킹했다. 신선한 충격이랄까. 인상 깊었다. 자연스레 신경외과에 관심이 쏠렸다. 인턴이 끝나고 경북 영덕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던 중 연락이 왔다. 아버지께서 뇌쪽을 다쳐서 입원하셨다는 전화였다. 아버지께서 3주간 입원하셨는데, 그 이후 신경외과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아버지의 사고 이후 뇌질환을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이야기인가.
▲그런 셈이다. 아버지께선 공사현장에서 근무하시다 3m 아래로 떨어지셨다. 이때 뇌출혈(외상성 뇌지주막하 출혈)이 생겨 바로 입원하셨는데, 다행히 출혈이 많지 않았다. 2~3일 후에 깨어나셔서 정상적으로 알아보셨다. 상태가 나쁘지 않아 수술도 하지 않고, 3주간 입원 후 퇴원하셨다. 원래 뇌에 흥미와 관심이 많았던 상태였는데, 아버지께서 사고를 당하신 이후 이런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레지던트 생활 중 뇌나 척추 등 신경계 수술을 보면서도 뇌혈관질환에 관심이 컸던 기억도 난다. 부끄럽지만 당시엔 대한민국에서 첫째가는 신경외과 교수가 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의사를 꿈꿨었나.
▲아니다. 초·중·고 당시엔 학업에만 열중했다. 좋은 학교 가는 게 중요했지 무엇을 하고 싶다,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진학할 당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좋은 성적을 얻었는데, 공대와 의대를 놓고 고민했었다. 아버님은 공대를 나오셨기에 공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을 수 있었지만, 집안에 의사가 없어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조언해줄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자세히 모르고 무작정 의사의 길로 들어선거나 다름없었다. 지금 와서 보면 두 가지 길 모두 장단점이 있다. 의사는 환자와의 일대일 업무인데다 실패나 성취도 바로 느낄 수 있고, 그게 괜찮은 점 같다.
-신경외과에 대해 쉽게 설명해준다면.
▲옛날에 비해 신경외과가 많이 알려져 있긴 하다. 뇌나 척추, 말초신경 등 신경과 관련된 질병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수술적인 치료방법과 약물적인 치료방법이 병행된다. 펜과 칼 모두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메리트가 있다. 대전성모병원 신경외과의 경우 진료 분야를 완벽하게 나누진 않았지만, 주로 척추와 뇌로 나눠 환자를 보고 있다. 가끔 뇌에 문제가 있다고 병원을 오신 분들이 알고 보니 척추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잘못 오해하고 오시는 경우가 있는 만큼, 정확한 정보와 진단이 필요한 진료과다.
-뇌혈관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첫째도 둘째도 시간이다. 빠른 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하는 것이다. 단 뇌혈관전문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가는 게 중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빠른 시간 내 전문적인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요즘 뇌졸중, 뇌경색 또는 뇌출혈에 대한 캠페인이 전개되고, 정보도 많이 공유돼 병원 내원 시간이 빨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골든타임이 지나고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갑자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증상이 밤에 나타났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가 한쪽 마비가 심해진 상태로 아침에 내원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운 때가 많다.
-빠르면 빠를수록 뇌 질환 전문 병원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는 얘긴가.
▲그렇다. 현재 뇌졸중 골든타임이 4시간 30분이다. 예전엔 3시간이었는데, 늘어났다. 하지만 처치를 하려면 더 빨리 병원에 와야 한다. 여러 검사와 조사를 진행하는데만 최소 1시간이다. 제대로 증상을 파악하고 빠른 시간 내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바로 찾으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동네 병원 한 두 군데 들렀다가 오면 감당하기 어렵다. 치료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다. 저녁에라도 증상이 의심된다싶으면 곧바로 응급실을 가야한다.
-주요 증상을 설명해준다면.
▲두통을 느끼다가도 평생 겪어보지 못한 심한 두통, 예를 들어 머리 안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깜짝 놀란 경우다. 그 뒤로 계속 아프다거나 누가 도끼나 망치로 머리를 내려치는 것 같은 통증, 약을 먹어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병원에 빨리 와야 한다. 두통의 세기가 점차 심해지면서 팔다리 마비증세, 시력장애,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이 나타나거나 고열과 함께 뒷목이 뻣뻣해지면서 두통이 지속되는 경우에도 병원을 찾아 꼭 검사를 해봐야 한다.
-대전성모병원 신경외과만의 장점을 소개해 달라.
▲대전성모병원은 2000년부터 빠르게 뇌신경센터를 개설했다. 신경외과와 신경과, 영상의학과, 재활의학과를 중심으로 뇌혈관환자 진료를 통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각 과별로 상호보완과 협조가 원활히 이뤄져 보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한 점을 장점으로 들고 싶다. 교수진이 소아신경외과 클리닉, 척추 클리닉, 뇌혈관 클리닉, 뇌종양 클리닉 등의 세부전공을 나눠 담당 중이다.
-그렇다면 이 교수만이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인가.
▲뇌혈관 질환의 수술적 치료로는 두개골을 절개하고, 외부에서 현미경을 보면서 시행하는 개두술과 조영제를 혈관내로 주사한 후 이 혈관을 영상으로 보면서 수술하는 혈관 내 수술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 두 분야를 다 시행하고 있고, 각기 수술의 장단점을 잘 비교 평가할 수 있어 환자분들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지금까지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
▲사실 환자를 오래 기억하는 경우는 결과가 좋지 않은 환자들이다. 결과가 좋은 환자들은 더 짧게 기억에 머무르는 것 같다. 안타까움이 커서인 듯하다. 가장 안타까울 때는 의료진은 환자를 믿고 노력하는데, 보호자가 포기하는 경우다. 물론 까만 봉투에 요구르트를 담아 오신 후 고맙다고 하시며 하나 주시는 할머님들이 기억에 남긴 하다. 10여년을 한결같이 아들을 휠체어에 태워 진료를 보러 오는 어머님도 마찬가지다. 이런 분들을 볼 때 직업에 대한 보람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보호자들이 환자에 대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나.
▲신경계 질환이 잠깐 왔다 없어지는 것도 있지만,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병도 있고, 후유증을 이겨내야 하는 것들도 많다. 급성기때는 당연히 의료진이 환자 치료를 10으로 계산한다면, 이 중 7~8을 책임지지만, 재활과 만성기로 접어들면 가족과 보호자의 몫이 7~8로 변한다. 이렇다보니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의 관계가 좋고, 회복의지가 뚜렷해 좋아지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환자들로부터 배운다. 환자와 가족들이 어렵고 힘든 점을 극복해내는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부분들을 배운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처음에야 꿈이 커서 불치병의 치료법을 개발하겠다거나 대한민국서 첫째가는 신경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조금씩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꿈을 구체화하고,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을 찾게 되더라. 현재 몸담고 있는 이곳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의사들과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사가 되자는 게 꿈이다.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계속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이 목표를 꾸준히 실천하는 게 목표라면 목표가 아닐까.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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