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친구나 가족들이 환자 병원에 동행하거나 문병하는 문화로 2차 감염이 더 확산됐을 수 있다. 응급실이 너무 붐볐고, 다인병실에서 여러 명의 환자들이 지냈던 것도 일부 요인이다.” (케이지 후쿠다 WHO 사무차장)
한국과 WHO(세계보건기구)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합동평가단은 독특한 '한국식 병원문화'를 메르스 사태 확산 원인으로 들었다.
먼저 인간관계나 인맥을 중요시 여기는 한국인들의 특성상 친척이나 지인의 병문안을 자주 가는 병문안문화를 꼽았다. 여기에 4~5명씩 떼를 지어 우르르 몰려가는 병문안 습관도 원인으로 꼽혔다. 병실에서 환자와 함께 숙식하며 곁을 지켜야한다는 간병문화도 원인 중 하나였다. 응급실에서 환자, 의료진, 보호자 등이 한데 뒤섞이는 시장통과 같은 응급실 환경도 포함됐다.
실제 국내 메르스 전체 확진자(186명)의 34%(64명)가 병실에서 감염된 환자 가족과 문병객이었다. 응급실의 경우 89명이 메르스에 감염됐다.
메르스 사태 당시부터 '한국식 병원문화를 뜯어 고쳐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고질적인 병원문화는 다시 도지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와 의료계의 의지는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메르스 사태 이후, 병원들은 감염 관리를 위해 면회시간은 물론 환자 1명당 면회객 수를 제한하고, 명찰 배부, 방명록 작성 등을 시행했다. 응급실은 1인 1보호자 원칙을 적용, 무분별한 보호자의 출입을 제한했다. 각 병동에 마련된 휴게공간을 면회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메르스가 종식되면서 위와 같은 제한은 '유야무야',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국식 병원문화 개선에 동감하던 시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탓이다. 전문가들은 시민의식 변화를 통해 고질병처럼 박힌 한국식 병원문화를 고쳐야 한다는데 뜻을 함께했다.
박노경 대전선병원 원장은 “우리나라는 가족이나 친지, 지인 등이 입원하면 병문안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지만, 지난 메르스 사태를 겪었듯 병문안문화는 반드시 변해야 한다”며 “병원이 지정한 면회시간이나 면회객 제한 등의 규칙을 준수하는 시민 의식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인희 을지대병원 병동 총괄 간호사는 “메르스 이후 예전보다는 환자나 보호자분들의 인식이 바뀐 분들도 있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 같다”며 “입원 환자에게 협조를 부탁하고, 동의서를 작성케하는 등 병원 자체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의 인식 개선과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 면회나 응급실 출입 등을 법으로 정해 제도적으로 시민의식 개선을 유도하고, 정부차원의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조덕연 충남대병원 진료처장은 “병원에서 병문안문화를 고쳐보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시행하고 있지만, 환자와 보호자들의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아 힘든 게 사실”이라며 “병문안문화가 메르스 사태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만큼, 재발 방지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법으로 규정해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고 밝혔다.
홍성엽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장도 “고질적으로 이어져왔던 한국식 병문안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긴 어렵겠지만, 정부가 법제정을 통해서라도 이같은 문화를 고치고, 시민의식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배영희 건양대병원 간호부장은 “법으로 제정할 경우 병원과 시민사회, 정부가 함께 범 사회적인 캠페인을 전개해 병문안 문화 개선의 필요성을 알리고,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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