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욱 중앙이비인후과 원장 |
왜 한국에서는 메르스 사태가 이렇게 커졌을까?
응급실 과밀화, 다인실 위주의 병원 입원실 구조, 병문안 문화, 가족 간병 문제 등 다양한 병원 전파 요인이 제기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지역사회에서 탄탄한 방역망이 구축돼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메르스가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메르스가 국내에서 열흘만에 환자 수가 두 자릿수를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된 것은 초기 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초기 대응 실패는 보건 당국이 첫 번째 환자를 확진한 후 그와 같은 병실을 사용한 환자, 보호자, 의료진 등에 대해서만 격리 관찰과 역학조사를 실시한 데서 잘 드러난다. 후에 같은 병동에 있던 환자에서 감염이 발생했고, 지휘권이 질병관리본부에서 복지부로 넘어갔지만, 삼성서울병원에서 더 큰 실패를 했다. 질병본부가 잘못 만든 '2m 이내, 한 시간 접촉'이라는 허술한 감염 기준을 복지부가 삼성서울병원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우를 범했다.
정부의 오판은 복지부의 기형적 조직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최근에는 정치권의 무상복지 바람을 타고 복지부가 더욱 비대해져 보건 분야가 소외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올해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 53조 4000억원 가운데 보건의료 예산은 2조2800억 원으로 4.3%에 불과하다. 본부 공무원 740명 중 보건 분야는 231명(31.2%)이고, 의사 출신은 18명(과장 이상 5명)이다. 2003년 사스 파동에 따라 질병관리본부가 발족했지만 현재 역학조사 전문 인력이 20명이 안 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나마 질병관리본부 역학 조사관 대부분이 관련 교육을 받은 공중 보건의이며 '정규직 공무원 역학조사관'은 2명뿐이라고 한다. 게다가 주요 간부 자리가 복지부 인사로 채워질 때가 많다. 복지와 보건이 한 부처로 있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생긴다. 질병관리본부도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고 역학조사 전담 요원을 육성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증명됐듯이 보건 분야는 국가가 직접 챙겨야 할 핵심 업무인 만큼 보건부를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
공공의료기관의 부족 또한 중요한 요소였다. 현재 국내 공공의료기관의 병상비율은 11%에 불과하며, 유럽 90%, 미국, 일본 35%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투자 의료기관의 부족으로 비상시 민간 의료기관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도 대전시 중구는 구청장의 발 빠른 대처로 전국 최초로 '메르스 선별 진료소'를 개설했고, 중구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왔지만 추가 감염은 없었다. 공공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절감에만 초점을 맞춘 의료 행위를 강요함으로써 병원에 다인용병실을 강제화하고 1인실 병실 비중을 높이는 것을 마치 병원이 비 도덕적인 영리 행위를 하는 양 비판한 정부와 언론도 반성을 해야 한다. 의료는 효(孝)의 근간이고 인권의 핵심이다. 경제 논리로 바라볼 문제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이재욱 중앙이비인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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