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길도 정도 깊은 곳…육지속 외딴 섬, 금산 방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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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길도 정도 깊은 곳…육지속 외딴 섬, 금산 방우리

금산에 방울처럼 붙어 '방우리' 무주 거쳐 금강변 걸어야 닿아 생필품 싣고 오는 트럭장수도 집배원도 한 가족이 되는 곳

  • 승인 2015-08-27 13:35
  • 신문게재 2015-08-28 14면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주말여행] 육지 속 외딴 섬, 금산 방우리

오지마을을 여행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나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 방우리는 행정구역상 금산군에 속하지만 무주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지척에 두고도 한바퀴 빙 돌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오지아닌 오지로 불린다. 그나마 승용차로는 마을까지 갈 수 있지만 버스는 무주터미널에서 앞섬 마을까지 가서 내린 다음 금강변을 따라 30여분 걸어야 한다.

그 끝, 금산 땅에 방울같이 붙어있다 해서 붙여진 방우리가 있다. 가장 먼저 이방인을 반긴 강아지를 따라 마을에 들어서자 생필품을 싣고 팔러온 트럭이 마을회관 앞에 서 있다. 마을에 가게가 없어 트럭장수가 자주 들러 주민들이 편리하단다. 다들 밭에 나가 일하는지 마을은 조용했다. 골목은 깨끗했고 집집의 대추나무엔 대추가 주렁주렁 열려 가지가 휘어질 지경이고 황토와 버무려진 돌담은 정겨움이 묻어난다.

대전에 산다는 김금순(80) 할머니는 시숙 제사땜에 며칠 전에 왔다며 걸죽하고 구성진 말투로 여행자를 반겼다. 걸어오느라 배고프겠다며 내 손을 잡아끌고 동서네 집으로 가잔다. 지은지 오래된 집이었지만 정갈해 주인의 성품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 동서가 워낙 부지런하고 깔끔혀. 이 고추장 맛좀 봐. 찹쌀로 조청 만들어서 맨든 고추장여. 그렇게 솜씨가 좋아.” 장독대 항아리를 열고 손가락으로 찍어먹어 보니 정말 찰지고 맛이 담백했다.

“마을 앞 강에 무주군수가 중국산 다슬기 씨를 뿌렸는데 등이 까끌해서 그지랄하구 맛이 하나도 ?어.” 복숭아도 깎아서 쉴새없이 내입에 넣어주며 마을 대소사며 집집의 아들·딸·손자까지 어디 사는지, 뭘 하는지 들려줬다. 그러는 사이 집배원 아저씨, 아랫집 할머니도 와서 금세 마루가 꽉 찬다. 집배원 생활 40년 됐다는 박상식씨는 주민들과 한 식구나 다름없단다.

떡도 사와서 어르신들에게 드리고 혈압·당뇨체크 등 주민들의 건강까지 챙긴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점심도 주시고 수제비, 칼국수도 해주시고 감자 고구마도 쪄주시구유.” 조미료 미원이 한창 인기였을땐 무주서 많이 사다드리기도 했단다. 마실 온 권기순(88)할머니는 방우리 자랑좀 해달라고 하자 공기좋은 거 밖에 없다고 했다. “뭐가 좋아. 아들며느리하고 사는게 좋지. 도시 사는 자석들은 같이 살자고 하는디 공기 좋은 여길 못떠나. 아들 집에 가두 테레비만 점드락 붙잡고 있다가 답답해서 다시 여기루 와.”

주민들의 가장 큰 불편은 교통이다. 버스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차가 없는 주민들은 무주에 가려면 택시를 불러 타고 나가야 한다. 방우리는 무주가 생활권이다. 택시비가 왕복 2만원이면 시골노인들에겐 적지않은 돈이다. 방우리는 3개마을로 돼 있다. 큰방우리에서 작은 방우리를 가려면 경사진 고개를 넘어야한다. 고갯마루에 오르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금강이 큰방우리에서 앞섬, 뒷섬을 거쳐 작은방우리를 끼고 도는 모양이 S자로 이어져 멋진 풍광을 만들어냈다. 10가구도 안되는 작은방우리는 수정같이 맑은 금강이 마을을 감싸며 흐른다. 생태적 가치가 큰 방우리습지엔 멸종위기종인 수달, 감돌고기 등이 산다. 그런 이유로 충남도 및 환경단체와 주민들간 마찰이 크다.

주민들은 마을 연결도로가 없어 금산 가는길이 막혔기 때문에 불편이 커 도로개설이 숙원이다. 반면 환경단체는 환경훼손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고 충남도는 비용을 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마을 어르신은 격앙된 목소리로 윗사람들을 비난했다. “거 뭐냐. 자민련 총재했던, 그때 심대평 지사
가 도로 놔준다고 해놓구선 언제 그랬냐싶더라구. 안지사도 모른척 하구. 그럼 여길 아예 전라도로 넘기든가. 주민들 불편한건 생각두 안혀.”, “그나저나 어두워질텐데 잘 데는 있어?” 동네 할머니한테 재워달라고 할 거라니까 “잉? 허 참!” 껄껄 웃으며 재밌어하신다. 어쩌다가 육지 속 외딴섬이 된 방우리. 방우리는 마을에 들어와서 나가려면 다시 오던 길로 나가야 한다. 더 나갈 수도 없고 강 건너 저쪽에서 들어올 수도 없는, 다가가기 힘든 샹그릴라 같은 곳이다. 수채화 같은 순결한 풍경, 들꽃의 달콤한 향을 머금은 공기, 그리고 유리알처럼 맑은 비단 금강. 잠시 갈 길을 잊고, 나는 여기 방우리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아 발걸음을 멈춘다.

▲가는길·먹거리=금산에서 가는 길은 없고 무주를 거쳐 가야한다. 버스를 타고 갈 경우 무주 앞섬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 시골이라 식당은 없다.

글·사진=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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