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교과서 한자병기 문제가 교육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에 걸쳐 찬반양론이 뜨겁다. 특히 교과서 한자병기 문제는 교육계, 학계는 물론 시민사회까지 나서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는 교과서 한자병기는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지만 한글단체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과 항의시위 등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오는 9월 교육부가 '2015 교육과정개정' 고시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교육계 뜨거운 감자가 된 교과서 한자병기 문제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학생 혼란만 야기 '실효성 없다'=교육부는 지난해 9월 24일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초·중등학교 교육과정)'의 총론 주요사항을 발표했다. 한자 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중·고 학교급별로 적정한 한자 수를 제시하고 교과서에 한자병기를 확대 검토한다고 밝혔다. 당시 발표 시안에서 중·고교 각각 900자 기초 한자를 유지하고 초등에 적정 한자 수 도입 및 교과서 한자병기 등을 제시하며 한글단체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한자병기 반대측은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시 아이들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고 가독성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또 학업부담은 과도한 사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어 결국 한자교육업체와 한자시험주관사만 배불리는 정책이라고 교육부의 추진안에 대해 비판했다.
한글초등교육학회는 지난 2월 초등교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65.9%의 교원이 교과서 한자 병기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참여 교사들은 한자 병기 효과를 묻는 물음에 '94.1%'가 학생의 학습 부담이 늘어난다고 답했고, '91.5%'는 교사의 수업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응답했다. 교원의 84%는 한자 병기로 교과서 읽는 속도가 오히려 느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또 교원의 58.2%는 한자 교육이 인성 교육 측면에서도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고 있다.
사교육에 대한 우려점도 나타났다. 초등교원의 91.1%가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로 한자 사교육이 과열될 것으로 보고 있고, 96.1%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한자급수시험 응시가 늘고 94.1%는 초등학교 1~2학년과 유치원생의 한자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것을 우려했다.
24일에는 교육단체와 한글단체 등으로 구성된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가 한자병기 공청회가 열리는 한국교원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자 교육 활성화와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를 결사반대한다”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또 “교육부가 한자급수시험을 주관해 돈벌이를 하고 있는 한자단체의 요구를 수용해, 초등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고 적정 한자 수를 기필코 제시하겠다고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문자생활을 한글로만 하더라도 우리말의 뜻을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고, 소통에도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자가 없는 한글로만 작성된 교재로도 학습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교육부는 초등교과서에 어려운 한자를 병기하기보다는 어려운 한자말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정책연구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한문교과에 있는 900자 한자를 잘 배울 수가 있는지 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5년 제정한 국어기본법에 따라 한글전용정책은 쓰고 있지만 교육부가 한자 병기를 추진할 경우 상위법인 국어기본법을 위반하는 문제도 있다.
▲한자병기(漢子倂記) 국가(國家)·사회적(社會的) 요구(要求) 증대(增大)하고 학생(學生)역량(力量) 강화(强化)=한자교육단체 등은 초등교과서(初等敎科書) 한자병기를 환영하고 있다. 정규교육과정에서 한자교육(敎育)을 등한시함으로써 한자를 읽을 수 있는 국민역량이 많이 낮아졌고, 중국(中國)·일본(日本) 등이 한자를 사용(使用)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경쟁력(競爭力)을 잃고 있다는 게 그들의 설명(說明)이다. 한자가 중국의 고유문자이긴 하지만 전통(傳統)적인 한자문화권(漢子文化圈)에 성장(成長)한 우리 역사(歷史)상 한자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역사 이해에도 필요(必要)하다고 주장(主張)한다. 또 우리말의 70%가 한자어인데 한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말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한자병기시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의 구분이 가능(可能)해 한자교육을 통해 독해(讀解)와 어휘력(語彙力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등교육에서도 한자가 많이 쓰이고 초등에서부터 한자교육을 통한 한자 이해가 바탕이 되면 지식(知識)수준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의견이다.
또 창의인성교육 측면(側面)에서도 한자교육이 중요(重要)하다고 말한다.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등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단체들은 “창의인성교육은 초등학교 한자교육부터”라며 한자는 도덕(道德)을 강조하는 고도의 뜻 글자로 인성(人性)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한자병기에 대한 국가·사회적 요구 증대하고 있다고 밝히며 긍정의견의 설문조사 내용을 공개(公開)하기도 했다. 학부모(學父母) 89.1%, 교사(敎師) 77.3%가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제기(提起)하고 있다는 설문과 '2010년 국립국어원의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서도 바람직한 한자교육 시기로 국민의 68.5%가 초등학교부터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초·중·고 교사의 77.5% 및 학부모 83%가 초등교과서 한자병기를 긍정적(肯定的)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는 24일 충북 청주시 한국교원대 교원문화관에서 한자교육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현장에서는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와 '전국 한자교육추진 총연합회' 관계자들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만큼 이 문제가 우리사회에 얼마나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1970년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 폐지 후 45년만에 논란이 되고 있는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를 두고 9월 교육부의 2015교육과정개정 고시 결과가 주목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한자어를 한글·한자로 병기표기함.
박고운 기자 highluck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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