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부산 감천문화마을…골목은 작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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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부산 감천문화마을…골목은 작품이 됐다

  • 승인 2015-08-20 14:10
  • 신문게재 2015-08-21 14면
  • 박희준 기자박희준 기자
[주말여행] 부산 감천문화마을

아름다운 꽃도 그림자에는 색깔이 없다. 제 몸의 크기에 맞게 주어진 그림자는 햇빛의 선물, 저마다 다른 색깔의 삶을 살아도 모두 같은 그림자를 남긴다. 슬픔도 그러하기에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쓰다듬을 수 있다. 그림자들이 모여 만든 꽃밭, 그곳에서 더 진한 향기가 풍겨 나온다.

길상호 사진 에세이 「한 사람을 건너왔다」 중에서


부산을 떠올리면 언제나 해운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곤 했다. 마음에 일렁이는 파도와 첫사랑과의 추억이 되살아나면 나도 모르게 발길이 닿는 곳. 이번 부산 여행은 특별히 행선지를 바꿔보기로 했다. 여행의 시작은 늘 설렘과 동시에 낯섦의 벽에 가로막힌다. 벽 틈 사이사이 서려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누군가 남겨놓고 간 낙서 같은 고백.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다시 찾은 대전역. 이른 시간 말없이 기차에 오르는 사람들. 목적지는 한국의 마추픽추, 산토리니로 불리는 감천문화마을이다.

부산역 광장에는 내일로 여행하는 대학생들로 가득했다. 그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커다란 지도를 펼치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든지 부산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사투리를 쓰는 부산사람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나 또한 그들처럼 연신 두리번거리며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감천마을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감천마을은 1950년대 태극도 신앙촌 신도와 6·25피란민의 집단거주지로 형성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지하철에서 나와 마을버스로 환승했다. 어린이집 버스처럼 작은 봉고차였다. 버스가 작은 골목길로 진입한 이후로 구불구불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다. 꽉 찼던 버스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걸 보니 감천마을에 다 왔다 보다. 내려보니 감천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길을 걷다보니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사이로 잡초가 무성했다. 발길이 닿지 않는 마을 사이로 감천마을을 향해 걸었다. 어느 덧 도착한 마을 입구 앞. 카메라를 들고 한참 서성거렸다.

산자락을 따라 늘어선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와 하나의 길로 시작해 오밀조밀 뻗어나간, 모든 길이 통하는 미로 같은 골목길. 감천마을은 지역 예술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모여 시작한 마을 미술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현재는 연간 30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마을입구에 있는 작은 박물관에 들어가면 옛날 사진과 물건들을 볼 수 있다. 다른 마을과 다른 점은 '스탬프 투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이 감천마을을 또 오고 싶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근처 슈퍼나 기념품센터에서 2000원 짜리 지도를 파는데 이 팸플릿에는 스탬프를 찍는 란이 있다. 이것을 들고 돌아다니면 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스탬프를 찍는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스탬프를 다 찍었다면 마을 끝 부분에 있는 감내어울터에서 기념품(마을사진 엽서)으로 교환할 수 있다. 골목길은 또 다른 골목길로 이어져 있고 골목길이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된 마을. 이 곳을 찾는 모든 이들도 마을 풍경 속에서 천천히 녹아들고 있었다.

파스텔 톤의 지붕.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 같다. 지도 없이도 마을을 다닐 수 있지만 기념품 삼아 지도를 구입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만약 지도를 사지 않았다면 집집마다 벽에 붙어있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으면 마을 곳곳을 살펴볼 수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떼 지어 헤엄치는 물고기를 따라 걸었으리라. 마을 높은 곳에 올라 전체를 사진에 담는 것도 좋지만 테마별로 꾸며진 집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포토존을 만날 수 있다. 풋풋한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멀리 보이는 또 다른 어촌 마을과 감천항이 보인다. 물고기를 따라 골목길로 들어서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곳, 모든 곳이 포토존이다. 길의 경사가 심하니 편안 운동화를 신고 걷는 것을 추천한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골목길. 옥상과 마당에서 바삭바삭 익어가는 빨래들. 외갓집 마당처럼 정겹다. 커다란 나무 밑에는 마을에서 오랫동안 세월을 보낸 노인들이 부채질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잠시 머무는 관광지이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한참을 걷다보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탁 트인 전망이 창밖으로 보이는 카페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쓰디 쓴 커피의 맛처럼 힘들게 삶을 지탱해 온 마을을 지켜온 사람들의 애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쓸모가 다해서 버려진 것들이 다시 태어나는 곳, 관광객들이 그들의 공간에 잠시 다녀가는 만큼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게 조금은 배려하는 마을을 가지고 여행했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마을들이 모두 감천마을을 닮아있었다. 어쩌면 그곳이 특별한 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삶 또한 닮아 있을 것이다. 풍경이 흘러내린 유리창, 감천마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는길=대전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역으로 간다. 지하철 1호선 토성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부산대학병원 C동 암센터 앞 버스정류장이 있다. 서구 1-1, 2, 2-2 마을버스로 환승하여 감천문화마을 정류장에서 내리면 마을 초입부가 보인다.

▲먹거리=부산의 명물 돼지국밥부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씨앗호떡까지 다양하다. 골목 어귀마다 작고 예쁜 카페가 가득하다. 마을을 내려다보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느껴보길. 산비탈에 지어진 집들을 헤매다 허기가 질 수 있으니 든든히 먹고 걷는 것이 좋겠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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