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국지사 정완진 옹이 정부로부터 받은 건국훈장 애족장 등을 들어보이고 있다. |
올해 8월 15일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가 35년 만에 되찾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 정완진(88ㆍ대전 유성구) 옹은 70년 전 광복을 맞는 심경에 대해 '그날이 오면'이란 시(詩)를 소개하며 설명을 대신했다. '그날이 오면'은 민족의 독립을 갈망하며 작가 심훈이 1930년 3월 1월 기미독립선언일을 기념해 쓴 식민지 시대 대표적 저항 시다.
항일학생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에 가입, 활동했다는 이유로 6개월간의 구치소 및 형무소 수감생활에서 일본 경찰로부터 갖은 고초를 당하며 광복을 고대했던 정완진 옹.
1945년 8월 15일, 그토록 바랐던 광복이 실제로 찾아왔지만, 감격의 기쁨을 바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으나, 바로 물러나지 않아서다. 잔혹한 일본의 만행에 모두가 느끼는 불안감을 보여준 것이다.
정 옹은 “감옥생활하고 숨어서 국민학교 교단에 서면서 찾아온 광복의 심경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며 “감격스러움을 표출하고 싶어도 주저했다. 또 변을 당할까 봐 불안감이 컸다”며 그날의 심경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광복의 심경을 얘기할 때 '그날이 오면'이란 시를 빠트릴 수 없다”면서 “이 시를 일제시대 때 수없이 많이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이야기는 다시 68년 전으로 돌아간다. 강산이 여섯 번 이상 바뀔 정도로 세월이 흘렀으나, 그는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정 옹. 그는 대구상업학교(5년제 학교) 4학년에 다니던 1943년 5월 23일 학교 수업을 받던 중 일본 형사에게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그가 끌려간 곳은 대구경찰서였고, 죄명은 치안유지법 위반이었다.
정 옹은 “태극단에 가입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 중 배신자의 밀고로 일본 형사에게 체포됐다”면서 “경찰서에서 6개월 동안 죽을 고비를 넘기다시피 했다”고 털어놨다.
그날 사건으로 태극단에 가입했던 인물 중 30명이 연행됐고, 이중 정 옹을 포함, 12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만 16세였던 정 옹은 다행히 기소유예 처분으로 풀려났지만, 경찰서에서 고문으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 태극단 생존자는 그를 포함해 4명뿐이다.
그는 광복 후 대구사범대학에 입학해 영어 교사로 43년간 교직생활을 하다 1992년 8월 말로 정년퇴직했다.
정 옹은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은 것에 대해 “광복으로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한국전쟁 후 남북 분단이라는 아직 어두운 측면도 남아 있다”며 “앞으로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한반도 통일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광복의 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인정해 건국훈장 애족장(1990년), 대통령 표창(1963년)을 수여했다.
박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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