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붉은 바다, 남도의 밤엔 학이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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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붉은 바다, 남도의 밤엔 학이 날고 있었다

학 두마리 본뜬 목포대교는 한복입은 여인처럼 고왔고… 가족과 낭만을 만끽하는 곳, 빛으로 더 다정한 밤이 기다려

  • 승인 2015-08-12 20:32
  • 신문게재 2015-08-14 14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주말여행]목포 밤바다, 빛의 인사

목포의 얼굴은 언제나 낮이었다. 명절에 고향 찾듯 틈만 나면 내려오는 남쪽나라였지만 오래된 항구도시는 해가 지자마자 쉽게 어두워졌고 겁 많은 여행자의 발걸음을 숙소로 재촉하게 했다.

네 번째 여행. 그동안 보지 못한 얼굴을 보고 싶어 밤을 걸었다. 그 사이 야경투어버스를 운영할 만큼 목포는 매력이 늘었다. 자네 인자 왔는가, 도시가 빛으로 환영했다.

호남선 목포역을 나서면 큰바위 얼굴 같은 기암괴석, 유달산이 보인다. 야경을 보기 전 들르기로 마음 먹었으니 무작정 위로 방향을 잡고 올랐다. 길에서 근대역사관이 된 옛 일제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일본영사관 건물을 만났다. 일제가 만든 세월의 주름. 근대 건축물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 벽을 더듬어 가며 만졌던 기억이 났다.

산에 오를 땐 자꾸 뒤를 돌아봤다. 고개만 돌려도 항구가 보이는 경치 때문이다. 최고 높이가 229.5m 로 동네 뒷산만큼 아담한데 풍경은 절경이니 도시의 주인공으로 사랑받을 만하다. 골목 사이 낡은 건물도 작고 귀엽게 보였다. 예전엔 계단 아래 색소폰 부는 아저씨가 항상 있었는데 언제부터 안 온 건지, 이날만 쉬는 건지 들을 수 없었다.

세상 모든 기다림은 길다. 여름해의 길이를 새삼 느꼈다. 산을 내려와 목포대교 야경을 보기 위해 해안도로를 저녁 7시부터 걸었는데도 날이 환했다. 셔터가 내려진 수산공판장, 생선을 내려놓은 텅 빈 리어카, 길 한가운데 누운 백구. 바다가 그려진 벽 옆에서 그물 손질을 하는 할머니들을 보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찰칵, 누군가의 노동을 너무나 쉽게 감상으로 삼는다. 여행을 할 때마다 어쩐지 미안한 이유다.

7시 반. 거리에 사람들이 늘었지만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박상민과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유달유원지는 쓸쓸했다. '머나먼 저 바다로 가면 찾을 수 있나….' 웃옷만 입은 채 모래놀이를 하는 남자아이들은 왜 이 노래들이 바다와 어울리는지 아직 모를 것 같았다.

목포대교는 8시쯤 불을 켜고 바다에 붉은 빛줄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노을의 여운에, 바다는 밤을 맞는 예감에 물들어 갔다. 대교의 메인 장식까지 불이 들어온 건 8시 13분. 맨 꼭대기의 붉은 조명 아래로 하얀 색 조명들이 사선으로 이어졌다. 학 두 마리가 날아오른다. 대교를 지을 때 형상화 했다던 모습이 과장이 아니었다. 한복 입은 미인마냥 요란하지 않게 곱다. 목포 남쪽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세 여인의 넋이 학이 됐다는 삼학도도 있으니 이 바다는 학 다섯 마리, 어찌보면 다섯 여인을 품은 셈이다.

여인들을 뒤로 한 채 춤추는 바다분수를 보러 버스를 타고 평화광장으로 이동했다. 하루 2~3회 20분씩 이어지는 공연이 벌써 시작돼 물줄기들이 음악에 맞춰 형형색색으로 솟구쳤다. 밤바다가 몇 번이고 밝아졌다. 어린시절 검은색 칠을 펜으로 벗기면 아래 칠해둔 알록달록한 색이 나오던 스크래치 미술 생각이 났다. 분수에 사연과 노래를 신청한 이들과 스치는 관광객들의 설렘. 바다의 율동 중간중간, '펑'하고 물기둥이 솟구치면 그들도 시원하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 뒤편 광장의 소년들은 바다의 춤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는 음악과 스케이트 보드 연습에 빠져 있었다.

광장 인파 일부를 따라 갓바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도록 나무데크를 놓아 산책하는 주민이 많은 곳이다. 갓바위에는 아버지의 관을 바다에 빠뜨린 아들이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며 갓을 쓰고 자리를 지켰다는 전설이 있다. 당연히 효도하라고 지어낸 이야기. 엄마와 팔짱끼고 구경나온 효녀가 웃는다. 큰맘 먹고 나서지 않아도 언제든 가족과 밤바다를 거닐 수 있는 목포 사람들. 짭짤한 비린내와 선선한 바람, 낭만을 일상에 품을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걷느라 허벌나게 고생했소, 빛의 거리 루미나리에가 숙소로 가는 길을 비춰주었고, 몇 장의 사진으로 화답했다. 한옥 게스트하우스엔 4인실을 혼자 쓰는 외로운 호사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창밖에서 목포가 미소 짓고 있었다. 생각보다 친절한 밤이었다.

▲가는길=서대전역에서 무궁화호로 3시간 50분, 새마을호로 3시간 정도 걸린다. 걷기 부담된다면 10월까지 운영하는 야경시티투어를 이용하는 것도 추천한다. 8월까지 저녁 7시, 그 이후에는 7시 반에 역 앞에서 예약 또는 선착순 탑승할 수 있다.

▲먹거리=홍어, 민어 등 항구음식이 좋겠다. 역에서 두 골목 정도 떨어진 코롬방제과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전국 5대 빵집으로 알려져 있다. 크림치즈바게트가 유명하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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