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유산'처럼 여겨지는 유교문화를 계승하고 맥과 정신을 잇기 위한 노력이 대한민국의 미래도시 '세종시'에서 결실을 맺었다. 세종시 어진동 초려 이유태 선생 묘역에 조성된 '초려역사공원'이 다음달 말 준공식을 앞두고 있다. 조선중엽의 유학자인 초려 이유태 선생의 유적과 정신을 기리는 공간으로 2004년부터 10여년간 뜻있는 이들의 땀과 노력이 모여 이뤄졌다. 선비들이 사랑한 '배롱나무'가 멋스럽게 자라고 있는 '초려역사공원'에서 초려문화재단 이연우(55·공주대 사범대학 객원교수) 이사장을 만났다. <편집자 주>
▲'심의'(深衣)를 입은 초려문화재단 이연우 이사장이 '초려역사공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심의'는 깊을 심(深)에 옷 의(衣),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몸과 마음을 깊이 생각하고 삼가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초려 문중 대대로 제사나 명절 때 입는 옷이다. 초려역사공원에서 진행하는 강의에는 강사와 학생들도 모두 심의와 유건을 갖춰 입도록 할 계획이다. 가운데 건물이 갈산서원, 왼쪽 건물이 장서를 보관하는 ‘도산재’(서재), 오른쪽이 어린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몽양재’(동재) 건물이다. |
-초려역사공원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간의 과정을 설명해달라.
▲초려역사공원 조성은 지난 10여년 지역과 전국 유림 및 사회 각계의 한결같은 기대와 성원에 힘입은 바 크다. 2004년 당시 연기군이 충남도청에 초려선생 묘역에 대한 문화재 지정을 신청했으나 같은 해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 시행으로 연기군이 신행정수도건설 개발 부지에 포함되면서 문화재 지정이 무기한 연기됐다.
그 후 2008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초려선생 묘역에 대한 강제이장통보를 받았다. 전국의 유림과 사회각계가 묘역 보존을 위한 서명운동에 나섰고 탄원이 빗발쳤다. 그 결과 2013년 LH와 초려선생 묘역에 공원조성을 합의했고 지난해 2월 기공식을 가졌다. 다음달 10일 기념비(문헌공 초려 이유태 선생 묘역 수호사적비) 제막식을 갖고 다음달 말에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초려선생의 12세손이자 초려선생유적공원추진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던 만큼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어떤가?
▲초려 선생 묘역은 지금까지 4번의 위기를 넘겼다. 구한말 일제 강점기 철도를 놓으려 했던 적이 있었고 일제가 방목장을 만들려 할 때도 있었다. 그 때마다 유림들이 나서서 지켜냈다. 제3공화국 시절에는 조판선 철로가 묘역을 지나려는 계획이 있었고 세종시 조성과정에서도 이장될 뻔 한 위기를 넘겼다. 그때마다 함께 힘 모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초려역사공원은 문중이나 개인의 사유재산이 아니다. 초려 선생의 사상과 문화를 재조명하는 공간이자 충청 기호유학의 맥을 잇는 곳으로 꾸려갈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초려선행 묘역을 지켜내고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뛰다보니 10여년이 흘렀다. 초려선생유적공원추진회 집행위원으로서 행정업무, 대외홍보를 총괄했다. 일의 추진부터 섭외, 심지어 '술상무'까지 앞뒤 안 가리고 열심히 해왔다.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크다.
-초려 선생은 어떤 분인가?
▲초려 이유태(1607~1684) 선생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 개혁사상가이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후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조선의 미래를 걱정한 지식인이다. 초려 선생이 1660년(현종 1) 조정에 국정개혁방안을 담아 올린 '기해봉사(記亥奉事)'는 역사상 최고의 상소문으로 꼽힌다. '기해봉사'는 조선의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시무책을 담고 있다. 국정개혁의 3대강령으로 '풍속을 바로 잡고', '인재를 양성하며', '낡은 폐단을 혁파할 것'을 제시했다. '기해봉사'는 355년 전에 작성됐지만 초려선생의 탁월한 현실인식과 광범한 국정개혁의 논리,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진실된 마음은 현대에서도 깊이 새겨볼만하다.
355년 만에 선생의 뜻을 기리는 '초려역사공원'이 만들어졌다는 점에 참으로 감회가 깊다. 초려 선생은 효종의 부름으로 송시열, 송준길 등과 더불어 한양으로 가 북벌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360여 차례 거론됐으며 효종, 현종 재위 당시 선비로서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 초려 선생은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미촌 윤선거, 시남 유계 선생과 함께 '충청오현'으로 꼽히고 있다.
▲ 초려역사공원의 갈산서원 건물 앞에선 이연우 초려문화재단 이사장. |
-초려역사공원에 대해서도 소개해 달라.
▲초려역사공원은 크게 초려선생 묘역과 서원으로 구성된다. 서원의 입구인 연영문으로 들어가면 정면 중앙에 전통적 강당 형태의 공간인 갈산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좌우에 장서를 보관하는 '도산재'(서재)와 어린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공간인 '몽양재'(동재) 건물이 마주보고 있다. '몽양재'는 어릴 몽(蒙)에 기를 양(養), 어린 인재들을 길러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재 양성을 강조한 초려 선생의 정신을 담고 있다. 초려역사공원에서는 시민 대상 고전학강의를 실시할 계획이다.
학생을 동반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우려 한다. 효종, 순종 등 왕에게서 하사받은 서책과 유물, 서간물 등 초려선생의 유물들도 전시할 예정이다. 시민들을 위한 '지역역사문화체험학습장'으로 역할을 할 것이다.
초려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선양하고, 충청권의 문·사·철 소장파 학자, 청년유학자, 청년유림들과 공동으로 지역 역사문화 바로 알기 및 충청권 정체성 확보를 위한 학술대회 등도 지속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유교문화는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문화다. 조선에서 만개했던 유교문화가 박제된 채로 박물관에서 관람객의 시선에 만족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초려역사공원이 유교문화를 현대에 꽃피우고 미래에 계승하는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유교문화를 미래에 계승한다는 점에서 충청(기호)유교문화권개발도 짚어봐야할 부분이라고 본다. 이 부분에 있어 유림과 문중의 협조도 필요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최근 인문학 열풍 속에 2010년 영남유교문화권 개발에 2조3천억원이 투자됐다. 충청권 4개 광역지자체에서도 충청(기호)유교문화권개발에 나서 대전과 세종, 충남, 충북의 4개 지자체가 지난해 행정협의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답보상태다. 유림과 문중의 민간이 참여해야 활성화될 수 있는데 여전히 관 주도로 기본계획수립에서부터 연구, 보존 및 학술대회까지 총괄하고 있으며 유림과 문중과 일반의 논의는 뒷전으로 미뤄져있다.
관 주도는 제약적이다. 유림, 문중 대표들에게 참여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충청(기호)유학을 대표하는 문중들과 대학의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대표, 지역 오피니언 리더 등 민간참여 부분을 확대하고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본다. 민관기업의 협력적 파트너쉽을 통해 충청(기호)유교문화권 개발에 함께 나서야할 때이다.
세종=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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