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만 파묻혀 지내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하는 파격이 우리의 교육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일등주의 현실 속에서는 학생들에게 오직 으뜸 실력만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생각까지 공부가 우선하도록 강요하고 조장하고 있다. 취미나 역량은 뒷전이다. 이는 대학입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일단 대학에 입학하고 보자는 게 교육인 것처럼 말이다.
이쯤 되다 보니 미래핵심역량이 학생들에게 또 다른 '올가미(?)'가 아닌지 사실 걱정도 앞선다. 왜냐면 하나의 과정을 놓고 학교현장마다 이름만 달리하는 짜진 틀 속이라면 미래핵심역량의 키워드인 창의성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교교육이라는 짜진 틀에서 전교생에게 일률적인 교육을 하다 보면 창의성보다는 있는 그대로에서 약간의 변화만 추구하는 형태의 교육이 될 공산이 다분하다고 할 수 있기에 그렇다는 얘기다.
다시금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뭘까? 그것은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강조하면서 인문소양교육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혼자서 묻고 답해본다. 그리고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자주 외치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지금 이 시간을 즐겨라)'이 새삼 와 닿는다.
인문학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요즘, 어릴수록 그리고 공교육이 나서야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는 천안 광덕초등학교(교장 김신형)의 사례로 교육현장에서의 카르페 디엠을 체감해본다.
▲ 논에서 놀자-모심기 교육 모습 |
'한자리 모임'은 소규모 학교 특성에 맞춰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빠짐없이 한자리에 모여 학교의 문제점이나 건의할 사항에 대해 논의하고, 친구들을 칭찬하는 시간을 갖는다. 고학년 학생들이 돌아가며 진행하는 '한자리 모임'은 학교와 친구 이야기로 뿌듯함을 느끼면서 다음 모임이 기대되는 자리로 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자리 모임'은 지역사회 인사를 초청해 넓게 살아가는 체험적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리로 저학년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예술공감 키우기=이 학교에서는 매주 목요일 3~4교시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바로 '얼~쑤'라는 우리의 전통 가락 소리다.
3~6학년을 대상으로 판소리 수업을 진행하는 광덕초는 판소리 전문강사를 통해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리고 문화예술 체험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학생들은 판소리 강습과 북 장단치기를 통해 우리의 얼이 살아있는 전통소리를 체험하고, 더불어 우리 전통소리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느낀다.
이는 인문소양교육이 전해주는 또 다른 재미다.
▲ 3~6 학년 판소리 수업 |
즉, 한복을 입고 하는 전통 인사법에서 전통음식 상차림, 전통의상 만들기, 전통놀이 활동, 전통문양 꾸미기, 한지공예 만들기 등은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을 키운다.
그리고 하나 더. 전교생이 매일 아침마다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내달리는 '사제동행 광덕 콧숨 달리기'는 에너지 발산을 넘어 교사와 선후배간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체력까지 다지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성공감 키우기=광덕초는 중앙도서관과 연계된 광덕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소규모농촌학교의 도서관에서 운영되는 책보다 훨씬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수혜를 이 학교 학생들이 톡톡히 받고 있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운영하는 도서관은 수·금요일은 오후 9시까지 개방한다.필요할 때면 언제든 학부모와 학생들이 책을 대출할 수 있고, 다량의 책을 접할 수 있다.
뭐니뭐니해도 이 학교의 지성공감 키우기는 토요 책 놀이 활동이다.
이 수업활동은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자신이 정한 인물로 이름을 정해 그림글자를 꾸며 이름표를 붙이는 '러닝 맨 놀이'로 재미를 선사한다.
▲ 화분에 다육식물을 심는 모습 |
이렇게 차곡차곡 쌓은 지식을 토대로 고학년에서는 토론문화를 체험한다. 학급 내에서 독서토론 활동을 하는가 하면 방과후 디베이트 창의·토론 수업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등 사고를 확장시키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자세를 배운다.
▲녹색공감 키우기=광덕초는 농산촌에 위치한 작은 학교로 지역적 특색에 맞게 아이들에게 텃밭에서 곡식을 키우고 내 나무를 기르는 등 자연친화적 활동으로도 인문소양을 넓히고 있다.
교장선생님과 함께 찰흙으로 자기만의 화분을 빚어 다육식물을 화분에 옮겨 심고 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학년별로 틈틈이 매실, 밀, 옥수수, 서리태 콩 등을 심으며 땀을 흘린 후 알알이 차오른 곡식을 수확하며 얻는 기쁨과 자연이 주는 선물에 대한 감사함을 배운다.
한편 광덕초는 '느낌표 있는 교사가 느낌표 있는 수업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교사들이 앞장서 소양을 갖추도록 노력하고 있다. 전통문화수업연구회를 조직해 전통예술문화에 대해 다방면으로 심도있게 고민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밖에 매월 모임을 하는 '광덕북커스', 자신만의 주제로 강의하는 '교실을 바꾸는 15분', 교실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더 나은 교육방향을 모색해가는 '행복 수업 이야기'를 비롯해 찾아가는 수업혁신과 관련한 공부모임, 구연동화 모임, 국악 연주 모임, 오케스트라 모임 등도 교사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 도란도란 책읽기 교실 |
이를테면 지난 4월 아빠가 손수 만든 김밥 도시락을 가지고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학부모들은 “아빠가 아이에게 사랑의 소풍 도시락을 싸주거나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며 정서적 유대감을 갖게 됐다”며 학부모 연수 참여에 적극적이다.
뿐만 아니라 금요일 교내 작은 도서관을 개방하는 날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도서관을 찾아 '한 가정 한 책 읽기'를 실천하고 있다.
이밖에 광덕초 학부모들은 가족과 함께 하는 광덕산 등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많은 시간을 자녀와 보낸다.
광덕초는 이를 통해 학교가 가족간 정감을 나누는 스킨십과 부족했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고, 내 아이의 친구들과 친구의 부모와도 친분을 쌓는 장을 만든다.
다시 말해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아이의 친구도 행복해야 한다'는 말처럼 광덕초는 말 그대로 광덕 마을 교육공동체를 일구면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처럼 학생들이 열정을 좇는 카르페 디엠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내포=이승규 기자 esk@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