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최전선' 간호사의 일기… "조금만 더 버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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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최전선' 간호사의 일기…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을지대병원 중환자실 홍민정 수간호사, 2주간의 코호트 격리 동안 심정 기록 "외로운 격리기간을 참아준 환자와 의료진에게 감사"

  • 승인 2015-06-24 18:14
  • 신문게재 2015-06-25 6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 을지대병원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을 위해 '코호트 격리'됐던 중환자실 수간호사의 일기와 당시 사진을 24일 공개했다. 사진은 전날 코호트 격리가 해제되자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br />을지대병원 제공
▲ 을지대병원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을 위해 '코호트 격리'됐던 중환자실 수간호사의 일기와 당시 사진을 24일 공개했다. 사진은 전날 코호트 격리가 해제되자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을지대병원 제공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환자가 입원해 ‘코호트(이동제한)’ 격리됐던 을지대병원 중환자실 수간호사의 일기가 공개됐다.

홍민정 수간호사는 지난 9일부터 격리가 해제된 지난 23일까지 중환자실에서 환자는 물론 동료들과 겪었던 일들을 기록했다. 일기에는 메르스 공포가 컸지만 간호사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 홍 간호사의 사투가 적혔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절실한 마음, 2주간 견뎌준 동료들과 환자들에 대한 감사함도 담겼다.

이에 본보는 홍 간호사의 일기 전문을 공개한다.

▲6월 10일. 탈진과 구토, 설사로 쓰러지는 동료들

미안함과 속상함이 뒤엉켰다. 확진환자와 기존 중환자의 사망소식에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확진환자는 물론이고 다른 중환자분의 마지막도 격리된 채 진행됐다.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장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기존 중환자의 보호자에게 사전에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했는데, 내가 많이 울먹거렸나보다. 보호자분이 오히려 ‘우리 아니어도 선생님들이 있으니까 다행이에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 엄마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려요.’라며 나를 다독여주셨다. 상황이 이렇게 돼서 죄송하다는 말밖에 전할 수 없어 더욱 속상했다.

어쩔 수 없는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추가 지원자들과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처음 방호복을 입는 선생님들은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울상을 짓기도 했지만, 우린 노란 방호복에 비하면 천국이라며 애써 달랬다. 인력의 추가지원이 있었지만 대부분 날숨을 다시 들이마셔야하는 N95마스크와 30분만 일해도 땀으로 흠뻑 젖는 방호복, 그리고 부족한 인력 탓인지 구토와 설사, 식욕부진과 탈진으로 쓰러지는 간호사들이 대여섯명 나왔다.

다시 급히 인원을 보충해가며 손발을 움직였다. 또 뜬눈으로 눈물만 흘리며 하루를 보냈다. 간호사라는 직업도 이 격리만 끝나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어서 시간이 흘러 밖으로 나가고 싶다.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다. 신혼 1달차인 ○○선생님, 결혼을 앞두고 웨딩촬영과 모든 것을 연기시킨 ○○선생님, 학교수업도 가지 못하는 ○○선생님,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아이들과 영상 통화하던 ○○선생님, 부모님께 걱정하지 말라며 담담하게 통화를 마치자마자 펑펑 울던 ○○선생님. 늦은 시간까지 뒤엉켜 울며 우리는 하나가 됐다.

▲6월 11일. 바깥공기와 바람을 살갗에 느끼고 싶다

새벽 2시경 응급상황으로 수술이 필요했다. 환자 처치와 자리이동, 수술을 위해 8번 소독 및 청소, 음압 유지 확인 후 수술, 끝난 후 또 열 번 가까이 소독을 했다. 그런 와중에 격리를 납득하지 못하고 나가겠다며 소란을 일으키던 한 환자분의 손에 맞아 ○○선생님의 고글이 움직이며 눈을 크게 다쳤다. 그 환자분은 평소 말수도 적었던 분이셨다.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바깥공기조차 쐴 수 없게 하니 속상하신 마음은 이해됐다.

하지만 우리는 서글펐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말없이 숨을 돌리는 순간에 고개를 숙이고 우는 선생님들 모습에 나도 왈칵 울어버렸다. 바깥공기와 바람을 살갗에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도 지난 며칠간 힘들고 속상함에 울던 날들과 다르게 ‘우리 부서는 손 씻기도 잘하고, 원래 잘해왔잖아’라고 극복 의지를 보이며 서로를 다독였다.

제일 먼저 간호사들 힘들겠다며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사주신 ○○교수님, 원장님의 영양제 처방을 시작으로 아무 관련 없던 선생님들의 지원, 설사로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죽을 사주신 부원장님, 아픈 간호사들의 문진도 시작되어 처방이 나기 시작했고 자가 격리 선생님들까지 찾아가 챙겨주시고 가족들에게 직원들의 격리와 건강상태를 연락드린 간호부 부장님과 팀장님, SICU 파트장님, 식단까지 더 꼼꼼히 챙겨주는 영양팀, 눈빛으로 응원해주는 우리 환자분들 등 생각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 모두가 함께 해주는 사실이 희망이 되어주었다. 어둠에 차츰 익숙해서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들이 이제 조금씩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고 아직도 모든 업무는 감염관리실을 거쳐야 하는 부분 때문에 쉽지 않지만 여러 부서의 지원으로 조금씩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는 한 두명씩 농담도 던지며 울다 웃다 한다. 아직 열흘도 더 남았지만 우리는 이제 울지 않는다. 이러다 죽겠다 싶던 생각도 죽더라도 할 수 있을 만큼 해보자는 뚝심으로 바뀌었다. 비록 고글 속 눈으로만 서로를 알아보고, 쪽잠도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걱정해주고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오늘 밤은 울지 않는다. 남은 기간 우리 스스로와 메르스로부터 환자를 지켜낼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6월 16일. 내 부모 보내듯 펑펑 울다

어제 연락드린 B씨 보호자분이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긴 심호흡소리에 이어 조용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대신 마지막 편지를 읽어 달라’는 말에 막내 간호사가 놀란 눈치로 나에게 알렸다.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해 눈물로 하소연하던 많은 보호자분들과는 다르게 침착하게 말을 이으셨다.

할 말이 많은데, 너무 미안하고 보고 싶은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받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아내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고 싶다고 하셨다. ‘남편이 ○○엄마에게 전합니다’로 시작된 편지의 내용은 처음 이를 받아 적던 막내 선생님부터 울렸다. 그리고 남편분의 편지를 끝으로 두 자녀분의 편지도 이어졌다.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 줄 것과 편지를 부탁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가족 이야기’ 로 느껴졌다.

병원 내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운 이 곳. 중환자실은 중증의 환자분들이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에 정을 나눌 시간도 없이 급히 나가시는 분들도 많다. 인사도 없이 아파하며 떠나시는 분들을 보며 함께 울었고, 한마디도 나눠보지 못한 분들도 계시지만 꾸준히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기시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었다.

을지대학교병원에 97년에 입사하여 14년째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며, 처음으로 내 부모님의 마지막을 보내듯이 펑펑 울었다. 편지의 내용이 중환자실 안을 가득 채우던 순간 우리는 눈물로 서로의 마음을 알았다.

▲6월 17일. 동료 몸이 내 몸 같아

다음날 아침, 우리는 더 이상의 아픔이 없길 바라며 또 바삐 뛰었다. 무거운 방호복과 마스크로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프면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게 쉬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쉬는 시간이면 창밖의 움직이는 것들을 확인하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다시금 현재로 돌아왔다. 서로의 지친 안색을 보며 웃어주고 격려했다. 내 앞의 동료 몸이 내 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과를 마치고 우리가 생활하는 병동에서 기분전환 겸 눈썹을 그린 ○○선생님을 보며 마스크 쓴게 더 예쁘다는 농담을 던지고 기분 좋게 각자의 병실로 돌아갔다. 밖은 아직도 난리통인 모양이지만 정작 우리는 그 안에서 침착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오늘 하루도 살아 있음과 함께하는 우리 중환자실 식구들에게 ‘감사’하며 마무리 한다.

▲6월 19일. 기다려주지않을 시간이라면 더 빠르게 흐르길

박 간호사의 생일이었다. 어떻게 아셨는지 생일카드와 스페셜 도시락을 보내주셨다. 힘들어 지쳐있어 생일인줄도 모르고 있던 ○○선생님은 왈칵 울었다. 밖에서 먹는 비싼 스테이크는 아니었지만 챙겨주는 사람,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모두 웃을 수 있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해서 얼마나 속상할까 싶다. 더 축하해주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다시 일을 해야 했다. 이왕 기다려 주지 않을 시간이라면 더 빠르게 흘렀으면 좋겠다. 다독여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도 힘찬 하루가 되었다. 우리가 건넨 축하인사를 우리가 받게 될 그날이 기다려진다.

▲6월 21일. “하루만 더 버티면 돼”

‘한 밤만 자면 돼, 기다려 줄 수 있지?’ 잔뜩 메인 목을 애써 삼키며 우리 아이를 달랬다. 남편도 혼자 애들 보랴 일하랴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색도 없이 어디 아픈 곳 있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쉴새 없이 물어대는 통에 주변 선생님들의 놀림거리가 됐다. 그래도 ‘기대감’은 지울 수 없다. 날짜와 시간 개념이 없었는데 상황실에서 기쁜 소식을 먼저 전해 주었다.

오늘이 21일이다. “하루만 더 버티면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을 거야” 말씀을 전하시던 부장님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부장님에 이어 어디 아픈 곳 있는지 또 확인하는 상황실 전화에 괜찮다고 전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나날 속에서 마지막이 보이기 시작하니 없던 힘이 생겨나는 것 같다. 하지만 생각일 뿐 몸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지친 모습을 보이면 다른 선생님들까지 동요될까봐 내색하지 못했다. 식욕이 떨어져 식사량은 줄었는데 몸은 부은 느낌이다.

격리가 해제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해 혼자 생각에 잠겨있다 보니 그새 힘이 났다. 중환자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환자분들을 보며 문득 우리가 가족을 만나러 간 사이에는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2주간의 긴 격리 기간이 끝나 아무런 색안경 없이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인데, 긴 시간동안 가족들과 면회조차 금지되었던 환자분들에게 먼저 나가게 되어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버텨주신 것처럼 힘내서 다시 시작된 면회 날 누구보다 행복하시길 바란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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