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백신 필요]'정보 은폐' 국민 눈가리다 화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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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백신 필요]'정보 은폐' 국민 눈가리다 화 키웠다

발생초기 '감추기' 급급 … 감염 확산되자 늑장대응 소통 부재·의료 미흡 등 총체적 부실이 '불신' 불러

  • 승인 2015-06-21 16:31
  • 신문게재 2015-06-22 1면
  • 이영록 기자이영록 기자
[메르스 극복, 희망백신 필요하다] 2. 부실한 방역망, 못믿을 정부

지난달 20일 이후 우리나라는 낯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란 감염병에 홍역을 앓고 있다. 확진자가 감소하면서 정부는 진정세로 돌아섰다는 판단이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발생 초기 정부는 정보 감추기에 급급했고, 여기에 보건당국의 안일하고 허술한 대응은 미지의 역병 확산을 부추겼다. OECD 국가보다 턱 없이 부족한 공공의료체계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이미 뚫려버린 방역망은 확진자, 사망자 증가로 이어지면서 국민의 불신은 높아졌다. 정부는 정보 은폐로 불신을 키웠고, 이는 불안감으로 확대돼 경기 전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경제는 앞이 보이지 않고 곳곳에서 신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과 긴급위원회에서 지적했듯이 우리 정부의 초기대응은 '빵점'에 가깝다.

매뉴얼만 고집하면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명확한 컨트롤타워가 어디인지 정부부처 사이에서도 혼선을 빚었다. 교육부, 복지부, 국민안전처 등 부처마다 서로 딴 목소리 내기에 바빴다. 국민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혼란만 가중됐다.

정부는 감염자 발생지역과 병원, 거쳐간 병원, 국가지정격리병상을 보유한 병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 사회 불안과 혼란이 고조되고 누리꾼들이 앞다퉈 정보 제공에 나섰다. SNS 등을 타고 쓰나미처럼 번지면서 반향은 컸다. 그럼에도 정부는 수사기관을 빌어 괴담과 유언비어 단속에만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이미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았고, 첫 확진자 발생 보름이 지나서야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감염 의심환자는 방치됐고, 자가 격리자는 통제되지 못했다.

정부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나 신종플루 대처 경험이 있고, 중동보다 월등한 의료수준만 믿고 미지의 역병에 대해 과신한 것이다. 상황은 시시각각 변했지만 보건당국은 매뉴얼만 고집했다. 공직사회 특유의 경직성, 유연성 부족까지 더해지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꼬여갔다. 내놓는 대책들은 뒷북, 늑장대응을 벗어나지 못했다.

공공의료체계가 무너진 한국 병원들의 민낯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메르스 감염을 다른 호흡기 질환과 감별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감염자와의 접촉 여부지만 대부분 의료기관에서는 메르스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의심환자에게 문진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의심환자들은 병원을 옮겨다니며 바이러스를 퍼 나른 꼴이 됐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정보 차단, 은폐가 메르스 확산을 부추겼고, 의료기관의 신뢰까지 무너졌다.

수익창출에 내몰려 매너리즘에 빠진 의료기관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전파 차단이 최우선인 감염예방 통제조치가 너무 허술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는 삼성서울병원의 자만은 메르스 최대 근원지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회에 나와 “(삼성이 뚫린 것이 아니라) 국가가 뚫렸다”는 답변은 며칠 지나지 않아 병원장의 사과로 이어졌다.

국민은 정부 불신을 넘어 의료기관조차 신뢰하지 못하는 최악의 불통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일부 격리대상자들은 지침을 어기고 개인생활을 즐기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은 온 데 간 데 사라졌다.

메르스와 연관된 의료진 자녀는 학교에 왕따를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달 20일 이후 한달간 우리나라는 불통(不通), 부재(不在), 불안(不安), 불신(不信) 등 총체적 문제가 종합세트로 나타났다.

그래도 국민은 희망의 끊을 놓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 변이가 이뤄지지 않았고,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늦긴 했지만 추가 확산을 막고, 종식을 위한 의료진의 눈물겨운 사투 또한 성숙한 시민의식 결집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WHO 이종구 메르스 합동평가단 한국측 단장은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공개가 가장 중요했지만 이 부분이 초기대응에 실패한 원인이고, 리스크 관리 측면의 거버넌스 확립 부재와 지자체를 동원하는 예측이 잘못돼 혼란을 가져왔다”며 “초기대응 실패로 발병 규모가 크고 양상이 복잡해 추가 환자 발생 가능성이 있지만 이후 대응은 강력하고 높은 수준으로 진행돼 통제조치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영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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