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20년, 여전히 지방은 중앙정부의 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대등한 관계라고 하지만, 실상은 수직적 관계가 더 짙어지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국가 예산의 80%와 주요한 정책과 사업 결정권을 틀어쥐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지방정부는 지속적으로 매년 예산을 받아내고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수십차례 중앙기관 청사를 드나들지만, 중앙기관은 시간을 제대로 할애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만나주지도 않을 정도다.
시 관계자는 “예산은 물론 사업이나 정책도 중앙이 거부하는 사례가 많지만, 대놓고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중앙기관의 '갑질'은 지방정부의 굵직한 현안사업 추진 과정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전만 하더라도 사이언스 콤플렉스 조성은 미래부가 약속했던 500억원을 지원하지 않아 2년 가까이 표류 중이고, KTX 호남고속철도 서대전역 경유 문제는 국토교통부의 애매한 결정으로 호남과 단절을 초래했다.
옛 충남도청사 부지 국가매입은 특별법이 통과됐음에도 주관 부처 결정이 늦어졌고 결국 예산은 2017년에 반영될 수 있고, 회덕IC 건설 국비 지원은 국토부와의 공동 부담 결정에도 기획재정부가 못 주겠다고 버티고 있다.
문창기 대전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중앙과 지방이 수평 관계가 됐다고 하지만, 현실은 수직 관계를 벗어나지 못할뿐더러 정부가 보조금을 가지고 길들이기를 하는 행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찬동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국고보조금이 줄줄 새는 실태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국가 중심의 예산 운영과 통계 방식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며 “국가 중심의 정책과 사업, 제도, 구조들을 다시 한 번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고질적인 중앙의존적인 행태가 종속관계를 자초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충남도 행정부지사 출신인 새누리당 이명수(아산) 국회의원은 “차상위계층에 대한 개념과 용도변경에 따른 개발부담금 등은 충남도가 제기해 법률이 만들어져 국가정책이 됐다”며 “중앙에서 권한을 주지 않는다고 하지 말고, 필요한 사항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장은 “중앙기관이 지방을 하부기관으로 여기거나, 권한과 돈을 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낭비한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방이 스스로 잘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능력을 키우면서 변해야 하는 노력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윤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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