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운동할 곳 찾아 십리길…

휠체어 타고 운동할 곳 찾아 십리길…

[월요포커스]오늘 장애인의 날, 멀고 먼 복지

  • 승인 2015-04-19 17:24
  • 신문게재 2015-04-20 7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1급 장애 이재우씨, 헬스장 가려 갈마동서 둔산까지 왕복
“돈 내고 운동하겠다는데…” 업소 3곳서 가입 거부당해
“불편한게 너무 많아… 장애인으로 사는 건 죄인 같아요”


▲ 1급 복합장애를 지닌 이재우(34ㆍ가명)씨가 대전 둔산동을 출발해 갈마동까지 휠체어를 손으로 저으며 가고 있다.
▲ 1급 복합장애를 지닌 이재우(34ㆍ가명)씨가 대전 둔산동을 출발해 갈마동까지 휠체어를 손으로 저으며 가고 있다.
운동할 곳을 찾아 휠체어를 손으로 밀어 하루 10리길을 왕복하는 장애인이 있다.

동네 헬스장에서 이용을 거부당하고 몸에 맞는 휠체어도 지원받지 못한 채 오늘도 낡은 휠체어를 끌며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도로를 몸에 새기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4시 30분, 이재우(34·가명)씨가 대전 서구 둔산동 건강체련관에서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휠체어를 몰았다.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고 뇌병변장애를 지닌 이씨는 이곳 헬스장에서 오전에 운동하고 오후에 사무실 일을 도운 후 집에 돌아간다.

양손에 하나씩 들고 팔 운동하는 아령부터 기구 위에 누워 역기를 들어 올리는 벤치프레스 그리고 가슴근육을 단련하는 '펙덱 플라이'까지 이씨의 1급 장애는 운동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공원에서 철봉 턱걸이와 평행봉을 10개씩 5번 반복해요. 그리고 헬스장에 와요. 마음이 시원해져요.” 이씨가 휠체어 옆에서 함께 걷는 기자에게 설명했다. 이씨가 휠체어를 밀며 서구 갈마동 집에 가는 길은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다.

두 발로 걷는 비장애인이 세 걸음에 갈 거리를 이씨는 팔을 여섯번씩 저어갔고, 인도 위에 낮게 올라온 맨홀 뚜껑에도 휠체어는 심하게 비틀댔다.

특히, 휠체어에서 본 횡단보도는 보행자보다 자동차에 맞춰진 듯했다.

인도보다 낮은 도로 높이에 만들어진 탓에 횡단보도를 만날 때마다 이씨는 휠체어 바퀴를 잡고 천천히 내려갔다가 횡단보도 끝나닌 지점에서 모든 힘을 쏟아 인도 위에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 두껍게 못이 박힌 이재우씨의 손.
▲ 두껍게 못이 박힌 이재우씨의 손.
비장애인이 두 걸음에 지나가는 횡단보도 끝 경사면을 휠체어는 매번 버거워했다. 그때마다 이씨 입에선 '헉, 헉' 숨찬 소리와 함께 양쪽 어깨는 날갯짓하듯 쉼 없이 펄럭였다. 서구청네거리에서 시청네거리를 지나 탄방동 숭어리샘네거리까지 오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장애인으로 사는 게 죄인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돈을 내고 헬스장에 다니려 했더니 사장님이 거부했어요. 갈마·탄방·괴정동 헬스장을 찾아갔는데 모두 거절당했거든요. 들어오지 말라는 식당도 있고요.” 잠시 쉬는 동안 이씨는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을 서운해하며 말했다. 사실 이씨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운동을 하고 싶어 헬스장 여러 곳을 찾아갔지만, 모두 거부당해 집에서 4㎞ 떨어진 서구건강체련관까지 휠체어를 밀며 오가게 된 것이다.

“운동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찾아간 건데 사장은 안 된대요. 일도 하고 싶은데 장애인 고용하기 싫어 벌금을 내는 기업도 있대요.”

이씨가 기운을 차리고 다시 바퀴를 굴린다. 버스는 탈 수 없고 택시도 태워주지 않으니 휠체어 바퀴를 저어야 집에 갈 수 있다. 이씨는 빠르게 달려오는 자전거와 자주 부딪혀 반듯한 자전거도로 대신 울퉁불퉁한 인도를 덜컹이며 갔고, 힘없이 자꾸 흘러내리는 발을 두 손으로 추슬러 발판 위에 반복적으로 올렸다.

또 큰마을네거리나 갈마삼거리처럼 긴 횡단보도에서는 이씨가 중앙선을 막 넘어설 때 여지없이 보행자 신호는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갈마아파트 방향의 갈마동 비탈길에서도 이씨는 꿋꿋이 팔을 저어 앞으로 나갔으나, 길을 막고 주차된 차량과 입간판 앞에서 번번이 가뿐 숨을 내쉬었다.이렇게 휠체어를 밀어 갈마동 자신의 집에 도착한 게 오후 6시 40분이었다.

이씨는 동네에서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이 없이 이렇게 4㎞를 휠체어를 밀며 오전·오후 오가고 있다.

장애1급이지만, 휠체어 구입에 필요한 자기부담금을 낼 여력이 없어 최근까지 목발을 짚고 다녔으며, 누군가 쓰다남은 휠체어를 받아 타이어가 다 달도록 사용하고 있다. 이씨는 “저는 운동을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휠체어를 운동삼아 타는 거예요”라면서 “내 몸에 맞춰 제작하는 휠체어는 힘이 덜 들고 안전하다지만, 저에게는 너무 비싸죠, 생각도 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4.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5.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1.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2.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3.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4.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5. 천안시의회 김영한 의원, '천안시 국가유공자 등 우선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상임위 통과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