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는 드릴게'. (영화 '신세계' 中) 영화 '신세계'를 본 이들이라면 박성웅<사진>의 이 한마디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속 그는 특유의 미소를 띄운 채, 가벼워서 더 섬뜩한 대사를 읊조린다. 그리고 그 해 우아한 악당 이중구 역으로 박성웅은 최초의 전성기를 맞았다. 묵힐수록 장맛은 더욱 깊어진다 했던가. 3년이 지난 지금, 연쇄살인마가 된 박성웅은 더 깊은 '악역의 맛'을 내는 배우가 됐다.
배우가 아닌 인간 박성웅에게 악역의 자취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는 아들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평범한 아빠이자 팬들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못하는 따뜻한 중년 남성이다. 극과 극의 매력을 오가는 이 배우의 모든 것을 알아봤다. 다음은
박성웅과 취재진의 일문일답.
-영화 '살인의뢰'의 살인마 역할 때문에 정신이 피폐해지지는 않았나?
수갑으로 경찰의 목을 따거나, 살인을 저지를 때 특수 분장을 하는데 그게 정말 살처럼 느껴진다. 그런 행동을 세네번씩 무표정으로 해야 되니까 밤에 멍하니 잠도 안온다. 아마 역할에 빠져서 그런 것 같다.
-지금까지 좀 악역 이미지가 강하다.
착한 역할을 하고 싶은데, 조건이 좋은 악역이 들어오면 또 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여태까지 한 역할들은 건드리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역할이었다. 건드려서 꺾은 거지. (웃음) 잘할 수 있는 걸 잘하고 싶다. 잘할 수 있는 것만 하면 안되니까 못하는 것도 도전해서 극복한다. 영화 '황제를 위하여'에서는 부산사투리에 도전했고, 이번 것도 솔직히 큰 도전이었다. 인간 목숨을 결정하는 건데, 경험해 볼 수도 없고…. 영화 '신세계' 때는 건달 형님들과 식사 자리하고 그러면서 그렇게라도 할 수 있지….
-차기작 '히든:신분을 숨겨라'도 그렇고, 점점 선한 역할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한꺼번에 바뀌면 사람이 죽는다.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야지.(웃음) 나쁜 놈 탈피하게 된 게 어딘가. 게다가 맡은 역할이 공무원이니까 얼마나 확 바뀐거냐.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모르게 보여주려고 한다.
-주변에서 제안도 많이 받았겠지만, 특별히 강한 캐릭터들을 해 온 이유가 있다면.
2년 전까지는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했다. 구색이 맞아야지. '이 역할이 괜찮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일이 많아. 힘들어' 이러기에는 너무 힘이 많이 남아있다. 강한 연기는 나도 힘들다. 생활 연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힘주고 '살려는 드릴게' 이러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냐.
-또래 배우들과 다른 본인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쌍꺼풀 없는 눈은 배우하면 안된다고 그랬다. (웃음) 정우성이나 장동건 같은 배우들을 선호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다보니 쌍꺼풀 없는 눈도 '개성파'라고 하면서 인정받더라. 일하면서 장점은 있었다. 차가운 느낌의 눈을 가지고 있으니까 좀 강한 캐릭터들이 많이 오지 않았나 싶다.
-6살 난 아들이 커서 본인의 영화를 보면 어떤 기분일 것 같나.
우리 아들은 '뽀로로'는 이미 끊었고 드라마 '미생'에 푹 빠졌다. (사진 보여주며) 좀 야쿠자같이 생기지 않았나? (웃음) 아내(배우 신은정)와 '미생' 세부 여행에 같이 갔는데 출연자들에게 인기 짱이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기를 한다. 아들이 다 커서 내 영화를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자. 지금은 어려서 잘 모른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TV에 나오는 줄 안다. 엄마와 아빠가 TV에 나오니까.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많겠다.
쉽게 가면 쉽게 무너지고, 어렵게 쌓아 올라가면 그대로 가는 거다. 배우로 더 살고 싶고, 배우는 국한돼 있으면 안된다.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박성웅은 이것도 할 줄 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겉으로 표는 잘 나지 않아도 욕심이 많은 편이다. 시간만 되면 다 하고 싶다.
-유부남에 40대인데도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조)재윤이가 무대인사 가서 깜짝 놀라더라. 앞에 팬들이 다 있으니까…. '용의자'에서 공유랑 같이 다닐 때보다 더하다고.(웃음) 연기는 16년 해왔지만 '신세계'로 그렇게 되고, 생전 처음 받아보는 관심에 적응이 안된 적도 있었다. 우리 애들은 좀 터프하다. 이번에는 담배랑 팩소주에 내 얼굴을 붙여서 촬영장에 나눠줬다. 아마 애들은 내가 살쪄도 좋아할 거다.
-'우리 애들'이라는 호칭도 그렇고, 팬 사랑이 각별한 것 같다.
걔네들을 보면 고맙다. 진짜 그런 것밖에 없다. 시사회에 와서 (날 보느라) 영화를 보지 않는 것도 안쓰럽고, 밖에서 기다리는 것도 안쓰럽고, 플랜카드 제작한 거 보면서도 '엄마한테 걸렸으면 등짝 스매싱 당했겠다'고 생각하니까 또 안쓰럽고…. '오빠랑 저희 엄마랑 두 살 차이 난다'고 하는 팬도 있었다. (웃음)
-팬에게든, 스스로에게든 좋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물지 않는다. (웃음) 항상 노력할 것이고, 저를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팬분들도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열심히 정진해서 하시면 무슨 결과든지 나올 수 있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 다른 쪽으로라도 좋은 결과들이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힘내시고, 나 버리지 마세요.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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