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군대를 전역해 직장을 구하던 김모(25)씨는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통해 한 건설회사의 전기보조 일을 찾았다. “중간부터 일해도 한달치 월급이 지급돼 회사가 손해를 볼 수 있어 통장을 한 달만 관리하겠다”는 건설회사 과장의 제안에 김씨는 통장과 카드, 카드 비밀번호 등을 모두 넘겼다.
하지만 과장은 잠적했고 김씨는 과장으로부터 금전손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 통장 양도행위가 드러나 경찰 조사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
김씨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앞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며 “이제는 신규 예금계좌도 만들 수 없고, 전자 금융도 할 수 없는 등 생활이 크게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올 1월부터 법이 개정돼 단순히 통장만 양도해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이처럼 구직자나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 대출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포통장 피해사례가 근절은 고사하고 지속적으로 발생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더욱이 올해부터는 통장을 빌려주고 대가를 받지 않아도 처벌대상이 될 수 있어 예금주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대전지방경찰청은 지난해 대전에서 대포통장을 매매·양도하는 행위에 대한 단속을 벌여 112건, 124명을 적발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전국적으로 4만5000여건의 대포통장(피싱사기)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는 전년대비 16.3%나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
대출사기 관련 대포통장 피해까지 포함하면 8만4000여건으로 추정된다.
과거 노숙자나 신용불량자 등을 대상으로 이뤄지던 대포통장 매입이 최근 들어 아르바이트·취업과 대출을 빙자해 통장과 현금카드, 비밀번호를 넘겨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대포통장 모집유형 및 그에 따른 민원유형을 살펴보면 아르바이트 공고(28.8%), 대출 알선(23.4%), 취업 알선(2.9%) 등이 절반을 넘는 상황이다.
특히 대출 알선과 아르바이트 공고로 인한 피해신고 민원이 341건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과 사업부진 등으로 자금압박을 받는 저신용자들의 심리를 악용, 범죄 행위가 끊이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욱이 예전에는 소수 계좌만으로 충분했지만 경찰과 금융기관의 대응이 빨라지면서 대포통장 수요가 절대적으로 늘어난 것도 이들이 불특정 다수 구직자를 노리는 이유로 꼽히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대포통장 관련 피해자이자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이들을 위한 구제 대책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올해 1월 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은 금전거래 없이 대포통장을 단순히 빌려준 사람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예금계좌 개설과 비대면 거래 등 금융활동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수사기관 한 관계자는 “대포통장 양도자의 경우 안타깝고 억울한 상황이 있지만 법적으로 통장이나 카드를 타인에게 넘겨주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대포통장이 범죄에 이용된 경우 비밀번호나 보안카드 등을 넘긴 것이기 때문에 책임이 따른다. 개인정보 요구 시에는 각별히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통장(카드)을 양도·대여한 경우에는 즉시 발급 금융회사에 거래 지급 정지를 요청하고,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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