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 대전구간에 마지막 남은 100년 역사의 신흥건널목(동구 인동)에서 관리원 전봉구 씨가 지키고 있다. |
지난 1일 대전 동구 인동의 신흥건널목에 경보종이 울리고 차단기가 서서히 내려와 길을 가로막는다.
깃발을 든 관리원이 재빨리 초소 밖으로 나와 보행자를 살피고는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신호하듯 손짓을 한다. 철길을 건너려던 사람들은 차단기 앞에 서서 기차가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른다.
대전에 경부선 철길이 놓이고 한국전쟁 시기를 제외한 100여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반복됐을 이같은 풍경이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오는 15일 호남선 대전건널목이 폐쇄될 예정이고 이달 말 경부선 신흥건널목도 지워질 예정이다.
두 건널목은 1904년 건설된 경부선과 1914년 개통한 호남선 대전구간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마지막 철길 위 통행로여서 의미가 깊다.
앞서 판암동 판암초교 인근에 있던 판암2건널목이 2006년 판암지하차도가 만들어지면서 폐쇄돼 가장 먼저 사라졌다.
다음에 동구 성남초교 앞 경부선 성남건널목이 2013년 폐쇄됐고, 연이어 판암1건널목도 2014년 KTX 전용선로 공사과정에 길이 없어졌다.
기찻길 위를 보행자가 걷거나 차량이 통과하는 게 상당히 위험해 사고가 빈번하고 교통체증도 유발해 철길 밑으로 길을 내는 입체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건널목은 차츰 사라졌다.
경부선 철도와 함께 100년 가까이 길목을 지켜온 천안 눈들건널목과 충북 옥천 삼거리건널목이 같은 이유에서 2012년과 2003년 각각 지워졌다. 이제 대전에 남은 신흥건널목과 대전건널목까지 지하차도에 기능을 내주고 이달 중 폐쇄되면 철길을 건너며 하루를 시작했던 대전 100년의 경험도 추억으로 남게 된다.
동구 성남동에서 만난 김병기(76)씨는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을 앞 철길을 건너는 게 일이었지. 마을 신작로는 모두 건널목으로 이어졌어”라며 “정체가 심해 성남건널목을 넘어가자고 하면 택시기사들이 질색했던 게 기억난다”고 추억했다.
신흥건널목 관리원 김무헌(64)씨는 “고속철도 전용선로가 완성돼 대전구간에서 시속 300㎞ 넘게 달리게 될 텐데 건널목은 더이상 남아 있을 수 없고 우리도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며 “철길을 건너려 서서 기다리던 학생들 모습이 기억에 잊히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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