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지대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남선혜 간병사.
사진 제공=을지대병원 |
남씨에게 '간병사'의 일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간병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직장에 다니고 있던 1997년 평소 다니던 교회(대전 백운성결교회)에서 말기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교육을 받게 됐다. 그 때 간병사에 대해 알게 됐고 “간병이야말로 내가 할 일이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의식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로 다니던 직장을 접게 되면서 간병사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됐다. 임시사설교육기관을 거쳐 2001년 대전YWCA의 간병사 교육을 받은 뒤 지금까지 대전YWCA 소속으로 일선 병원에 파견형태로 근무하고 있다. 7년째 몸담고 있는 을지대병원에서는 4층부터 14층까지 안 돌아본 병동이 없을 정도다.
10년이 넘는 세월, 간병사로 일하며 보람도 컸다. 영영 말을 못할 줄 알았던 환자가 “추워!”라며 말문을 튼 뒤 금세 건강을 되찾아 퇴원했고 3년 뒤에는 남 간병사를 찾아 부인과 함께 멀리 강경에서 을지대병원까지 찾아왔다. 병원 복도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 환자가 '진심으로 좋아서 바라보던' 그 느낌, 밥이라도 함께 하자는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자 끝내 도시락을 들고 찾아와서 고마움을 표하던 그 환자의 마음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또 다른 환자는 완쾌한 뒤에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서 아들의 결혼식에 와주기도 했다.
“간병사로서 환자들이 완쾌해서 건강하게 나가실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남 간병사에게 어려운 점은 없는지를 묻자 중증환자를 하루 24시간 돌봐야 하는 업무 특성상 가족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다. 환자를 돌보느라 정작 가족에게는 따뜻한 밥 한 끼 차려먹이기 쉽지 않기 때문.
“택시영업을 하는 남편이 올해 환갑인데 제일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 간병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아들이 간병사 업무를 그만두라고 자꾸 말리기도 해서 지난해에는 4개월을 쉬기도 했다. 일을 그만두고 여행도 다니고 등산도 다니고 해야지 했는데 결국은 지난 10월부터 다시 다니고 있다. 병원에 있는게 더 편한 걸 보면, 간병사야말로 어쩔 수 없는 천직인 것 같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어려서부터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이 싫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이웃에 80살 넘은 할머니를 찾아가서 말벗이 되드리곤 했다”는 남 간병사에게 그래도 간병사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느냐고 묻자 “하루 24시간 환자 곁에 있어야하다보니 끼니를 떼우기가 쉽지 않다. 밥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끼니 때마다 한 봉지씩 꺼내먹는다. 냉동밥을 먹을 때 많이 힘들다. ”며 고충을 토로했다.
“24시간 1대 1로 환자를 돌보느라 몸도 아프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환자들과 함께 울고 웃기도 하며 간병사로서의 큰 보람을 느낀다. 돌보던 환자가 건강하게 퇴원할 때 그 보람을 알기에,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는 남 간병사를 보며 '간병'이라는 단어에 담긴 희생과 사랑, 헌신의 의미를 새겨봤다. 묵묵히 환자를 돌보고 생명의 불씨를 지키는 힘, 봄날의 따사로운 햇볕과도 같은, 그 힘이 아름답다.
김의화 기자 joongdonews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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