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천안 봄나들이…보다, 그리고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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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천안 봄나들이…보다, 그리고 맛보다

광장에 설치된 거대조각 눈길… 류인 작가 작고展 '명불허전' 병천순대 곁들인 식도락 여행, 먼길 온 수고로움 잊어

  • 승인 2015-03-05 15:11
  • 신문게재 2015-03-06 14면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천안 봄나들이

▲ 류인作 '급행열차-시대의변'
▲ 류인作 '급행열차-시대의변'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언젠가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다짐하던 터였다.

천안에 들어서자 거리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아! 낼모레가 3·1절이지. 정부정책으로 태극기달기 캠페인이 요란하더니 거리마다 태극기가 장관이다. 버스에서 내려 터미널 대합실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 웅성거리며 화면에 시선을 꽂고 있다. 뭔일 있나 싶어 다가가 보니 또 엽총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자고나면 사건이 생기니 원.” 한 아주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자리를 뜬다.

가만 있자, 아라리오 갤러리가 신세계백화점 옆에 있다는데…. 백화점 1층으로 올라가 밖으로 나오자 광장이 펼쳐졌다. 찬바람 속에 눈부신 햇살이 내리꽂는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자동차 경적소리가 요란하다. 천안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답게 빌딩이 빼곡하고 색색의 간판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막 부상하는 신흥산업도시처럼 활기가 넘친다. 한숨 돌리자 광장에 설치된 거대한 조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가 13m나 되는 '매니폴드'는 여러개의 덩어리들이 유기체처럼 서로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다. 융합과 소통을 의미하는 걸까. 아르망 페르난데스의 '수백만 마일'도 있고, 인도 출신 수보드 굽타의 'Line of Control'은 거대한 버섯구름을 형상화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관심있는 만큼 세상은 내게 각각의 속살을 내보인다.

▲ 조각광장에 있는 수보드 굽타作 '라인 오브 콘트롤'
▲ 조각광장에 있는 수보드 굽타作 '라인 오브 콘트롤'
아라리오 갤러리는 짙은 밤색의 건물로 마치 설치미술 같다. 멋들어진 외양에 '류인 작고 15주기 기념전 불안 그리고 욕망'이란 커다란 포스터가 눈길을 잡아끈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가다 보면 데미언 허스트의 '찬가'라는 작품도 보인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숱한 논란을 일으키는 작가지만 인체해부도 같은 '찬가'는 장난감 같아서 재미를 준다.

사실 '류인'이라는 조각가는 미술에 어느정도 관심이 있음에도 생소했다. 지난 1월 중앙지의 전시회 소개 기사에서 보고, 그것도 천안에서 열린다길래 꼭 와봐야지 했었다. 과연 그 명성이 헛되지 않았다. 작품 하나하나엔 '불안 그리고 욕망'이라는 타이틀처럼 인간이 지닌 내적 불안과, 이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자신이 지병인 결핵과 관절염, 거기다 음주로 인해 쇠약해진 몸이어서일까. 남성의 꿈틀거리는 근육과 골격이 과감하게 표현됐다. 관절이 툭툭 불거진 발가락과 손,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는 장딴지는 만져보면 온기가 느껴지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류인은 작가 노트에서 “내 작품이 조용하지 못한 것은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류인作 '입허'
▲ 류인作 '입허'
특히 전시실 입구에 다리를 쩍 벌리고 서 있는 7명의 벗은 남자 조각상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름하여 '급행열차-시대의 변'. 급행열차처럼 달려온 우리사회는 지금 어떤가. 릴케는 『로댕론』에서 “조각은 인간의 동경과 불안을 솔직하게 사물화하는 것”이라고 간파했다. 19점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1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조각예술에 이렇게 몰입한 적은 없었다. 새삼 천안 시민들이 부럽다. 이렇게 품격있는 전시회도 열리고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을 맘껏 감상할 수 있는 조각광장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아쉬움도 있다. 도록도 없고 작품 설명이 작품 옆에 있지 않아 집중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이런 결점에도 먼 길을 와야하는 수고로움이 아깝지 않다. 전시는 4월 19일까지다.

밖에 나와 보니 해가 중천에 떴다. 추위도 어느정도 가시고 슬슬 배가 고파진다. 병천순대를 먹으러 갈 참이다. 시내버스로 40분을 달려 병천순대거리에 도착했다. 구수한 냄새가 거리를 진동한다. 카센터에 들러 제대로된 순대를 먹고 싶다니까 '충남집'을 소개했다.

식당에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혼자 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으려니 미안한 맘이다. 역시 맛이 달랐다. 흔히 먹는 순대는 누린내가 나는데 여긴 잡냄새가 안 났다. 순대국밥도 돼지사골을 고아서 낸 국물이라 진하면서도 깔끔했다. “새벽 4시부터 사골을 고기 시작하죠. 병천순대는 피를 많이 넣고 마늘, 파, 양파 등을 넣어서 고소하고 느끼하지 않다고 하네요.” 식당 사장 이관희씨의 얘기다. 원래 시어머니가 하던 걸 이젠 본인이 물려받아 운영한단다. 병천순대가 언제부터 유명했는지 궁금했다. “옛날부터 있긴 했지만 독립기념관 생긴 뒤로 손님이 부쩍 많아졌어요. 그래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죠.” 순대를 배불리 먹고 시내버스 맨 뒷자석에 앉자 졸음이 쏟아진다. 어느새 꾸벅꾸벅 졸면서 옆에 앉은 젊은 청년에게 몸이 자꾸 기울어진다. 뭐 어떠냐, 봄도 오는데!

글·사진=우난순 기자

▲ 충남집 병천순대국밥
▲ 충남집 병천순대국밥
▲가는길:승용차로 갈경우 IC를 타서 천안IC로 들어가면 되고 버스는 대전복합터미널에서 천안가는 버스가 20분에 1대 꼴로 있다.

▲먹거리:병천순대는 피를 많이 넣고 마늘, 파, 양파 등을 넣어서 고소하고 느끼하지 않다. 시어머니가 하던 식당을 이젠 본인이 물려받아 운영하는 '충남집'은 병천순대거리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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