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인作 '급행열차-시대의변' |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언젠가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다짐하던 터였다.
천안에 들어서자 거리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아! 낼모레가 3·1절이지. 정부정책으로 태극기달기 캠페인이 요란하더니 거리마다 태극기가 장관이다. 버스에서 내려 터미널 대합실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 웅성거리며 화면에 시선을 꽂고 있다. 뭔일 있나 싶어 다가가 보니 또 엽총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자고나면 사건이 생기니 원.” 한 아주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자리를 뜬다.
가만 있자, 아라리오 갤러리가 신세계백화점 옆에 있다는데…. 백화점 1층으로 올라가 밖으로 나오자 광장이 펼쳐졌다. 찬바람 속에 눈부신 햇살이 내리꽂는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자동차 경적소리가 요란하다. 천안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답게 빌딩이 빼곡하고 색색의 간판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막 부상하는 신흥산업도시처럼 활기가 넘친다. 한숨 돌리자 광장에 설치된 거대한 조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가 13m나 되는 '매니폴드'는 여러개의 덩어리들이 유기체처럼 서로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다. 융합과 소통을 의미하는 걸까. 아르망 페르난데스의 '수백만 마일'도 있고, 인도 출신 수보드 굽타의 'Line of Control'은 거대한 버섯구름을 형상화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관심있는 만큼 세상은 내게 각각의 속살을 내보인다.
▲ 조각광장에 있는 수보드 굽타作 '라인 오브 콘트롤' |
사실 '류인'이라는 조각가는 미술에 어느정도 관심이 있음에도 생소했다. 지난 1월 중앙지의 전시회 소개 기사에서 보고, 그것도 천안에서 열린다길래 꼭 와봐야지 했었다. 과연 그 명성이 헛되지 않았다. 작품 하나하나엔 '불안 그리고 욕망'이라는 타이틀처럼 인간이 지닌 내적 불안과, 이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자신이 지병인 결핵과 관절염, 거기다 음주로 인해 쇠약해진 몸이어서일까. 남성의 꿈틀거리는 근육과 골격이 과감하게 표현됐다. 관절이 툭툭 불거진 발가락과 손,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는 장딴지는 만져보면 온기가 느껴지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류인은 작가 노트에서 “내 작품이 조용하지 못한 것은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류인作 '입허' |
밖에 나와 보니 해가 중천에 떴다. 추위도 어느정도 가시고 슬슬 배가 고파진다. 병천순대를 먹으러 갈 참이다. 시내버스로 40분을 달려 병천순대거리에 도착했다. 구수한 냄새가 거리를 진동한다. 카센터에 들러 제대로된 순대를 먹고 싶다니까 '충남집'을 소개했다.
식당에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혼자 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으려니 미안한 맘이다. 역시 맛이 달랐다. 흔히 먹는 순대는 누린내가 나는데 여긴 잡냄새가 안 났다. 순대국밥도 돼지사골을 고아서 낸 국물이라 진하면서도 깔끔했다. “새벽 4시부터 사골을 고기 시작하죠. 병천순대는 피를 많이 넣고 마늘, 파, 양파 등을 넣어서 고소하고 느끼하지 않다고 하네요.” 식당 사장 이관희씨의 얘기다. 원래 시어머니가 하던 걸 이젠 본인이 물려받아 운영한단다. 병천순대가 언제부터 유명했는지 궁금했다. “옛날부터 있긴 했지만 독립기념관 생긴 뒤로 손님이 부쩍 많아졌어요. 그래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죠.” 순대를 배불리 먹고 시내버스 맨 뒷자석에 앉자 졸음이 쏟아진다. 어느새 꾸벅꾸벅 졸면서 옆에 앉은 젊은 청년에게 몸이 자꾸 기울어진다. 뭐 어떠냐, 봄도 오는데!
글·사진=우난순 기자
▲ 충남집 병천순대국밥 |
▲먹거리:병천순대는 피를 많이 넣고 마늘, 파, 양파 등을 넣어서 고소하고 느끼하지 않다. 시어머니가 하던 식당을 이젠 본인이 물려받아 운영하는 '충남집'은 병천순대거리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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