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분이 지나자 영동 심천역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기차는 서둘러 나를 부려놓고 저만치 달아난다. 내린 승객은 단 두명. 하늘을 보니 구름 한점 없다. 코발트빛 하늘 아래 덩드러니 자리잡은 심천역이 나를 반긴다. 같이 내렸던 짐보따리를 인 아주머니는 어느새 사라졌다. 여기저기 기웃기웃 살피다 대합실로 들어가 보니 노인 한 분이 앉아 있었다. 모직 중절모에 두툼한 코트를 입은 차림새가 고흐의 ‘가셰 박사’를 떠올리게 했다. 병색이 짙은 노인은 기차를 타려는 지 곧 일어섰지만 걸음걸이가 불안정했다. 염려스런 눈길을 보내자 대전 간다며 내게 손인사를 한다. 마침 역무원이 노인을 부축해 기차 타는 데까지 바래다 드렸다. 간이역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정겨움이 묻어난다.
불현듯 옛 생각이 난다. 새벽기차 타고 광주에서 내려 역 대합실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겨울이라 제법 추워 몸을 움츠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앞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역무원은 흔히 있는 일인 듯 남자를 일으켜 의자에 앉혔다. 한참 후에 남자는 진정이 됐는지 충혈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헝클어진 머리에 옷차림이 남루한 것으로 봐서 노숙자인 듯 했다. 가족은 있는지, 밥은 먹는지, 지병이 있는 것 같은데.... 삶이 제각각인 건 알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이기엔 조물주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지곤 한다.
면소재지인데도 마을이 너무 한적했다. 눈부신 햇살만이 내리쬘 뿐 오가는 사람 하나 없다. 건물의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양지와 음지의 선명한 대비가 데 키리코의 ‘우울하고 신비한 거리’처럼 거리가 텅 비었다. 유령도시에라도 온 걸까. 권태에 빠진 햇살 날카로운 콘크리트 바닥을 거닐며 내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는 타타르인 같다고 생각했다. 길 가 회전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던 할아버지를 만났다. 서로 반가워 금세 친해진다. 뒤에 있는 가게 주인이시냐고 물으니까 담배도 팔고 시계도 판다며 담뱃값이 올라 담배가 안팔려 재미가 없단다. “내가 6.25때 미군이 담배를 주길래 피웠더니 구수해서 계속 피워. 65년 됐어. 밥은 굶어도 담배는 못끊지 뭐.”, “담배 잎에서 치매약을 추출해서 담배 피우면 치매도 안 걸린다대.” 대전서 가까운데도 공기가 참 맑다고 하니까 “사람이 벨루 없으니께. 젊은이들은 다 대전으로 나가고 노인들만 살어. 올해 초등핵교 입학생이 1명이면 말 다했지”라며 씁쓸해한다.
가는 길: 열차는 무궁화호로 대전역에서 하루 5번 운행한다. 첫차는 오전 11시 58분이고 막차는 오후 8시 9분이다. 승용차로는 40분 걸린다.
먹거리: 워낙 마을이 작아서 식당이 두세곳 밖에 없다. 도시락을 싸가서 먹는 것도 재밌을 듯 하다.
우난순 기자 woorain418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