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부여·박정희 정부, 김대중 정부), 이현재(홍성·노태우 정부), 이회창(예산·김영삼 정부), 이해찬(청양·노무현 정부), 정운찬(공주·이명박 정부) 전 총리가 '내각 수장'에 올랐다.
경제학자인 이현재 전 총리를 제외하곤 대권을 염두에 둔 정치 행보로 총리직을 시작했다.
이들 중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이회장 전 한나라당 총재만이 대선에 도전했고, 잠룡 후보에 올랐던 이해찬 전 총리과 정운찬 전 총리는 '출장'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충청권 첫 총리인 김 전 총재(11대 총리, 1971년 6월 4일~1975년 12월 18일)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견대립으로 총리직에서 하차했으나 4년 6개월 간 권력의 2인자 노릇을 했던 실세로 주목을 받았었다.
김 전 총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DJP연합을 결성, 15대 대선 승리에 일조해 국무총리(31대, 1998년 8월18일~200년 1월 12일)에 임명됐다. 김대중 정부 초기 일부 각료에 대해 인사권을 행사했으나 내각책임제 실현과 김대중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가 퇴임했다.
김 전 총재는 결국 2004년 17대 총선에서 낙선(비례대표 1번)한 뒤 정계를 은퇴하며 '충청권 맹주'라는 이름도 내려놓게 됐다.
이현재 전 총리(20대, 1988년 3월2일~1988년 12월 4일)는 짧은 재임 기간이어서 특이한 점은 없다.
선친 고향이 예산이어서 충청 총리로 알려진 이회창 자유선진당 전 총재(26대, 1993년 12월 17일~1994년 4월 21일)는 “법적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가 4개여 월 만에 물러났다.
그 후 15대와 16대에는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17대에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으나 세 번 연속 낙마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해찬 전 총리(36대, 2004년 6월30일~2006년 3월 15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신해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등 책임총리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자기주장이 강하고 야권과 잦은 마찰로 대권 후보군에서 멀어져갔다.
이명박 정부 때는 정운찬 총리(40대, 2009년 9월 29일~2010년 8월 10일)가 세종시 수정안 추진 논란 등으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정 전 총리는 18대 대선을 앞두곤 사회통합형 대선 후보로 거론됐으나 지지율이 오르지 않아 출마를 접었다.
결국 충청 총리들은 대권의 문턱을 아무도 넘지 못했다. 이래서 충청인들은 이완구 후보자의 대망론에 거는 기대는 더 커 보인다.
특히 역대 다른 충청 총리와 달리, 충남지사·충남경찰청장·충북경찰청장 등을 거치면서 다져온 탄탄한 지역 연고가 대선가도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서울=오주영 기자 ojy8355@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