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야당을 설득해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하고 예산안을 법정기한 내에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본 여야 의원들은 이 후보자의 정치력과 소통에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 초등학교 3년 때 중학생에게 맞고서는 돌멩이를 들고 사흘 내리 대문 앞을 지켰다는 일화도 있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두 번씩이 낙방하고도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들어가 행정고시에 합격해 첫 공직을 경제기획원에서 시작했다.
이후 좀 더 활동적인 분야로 나가고 싶어, 경찰로 전직한 이 후보자는 31세에 최연소 경찰서장, 39세에 최연소 경무관을 달았다. 15대 총선에선 충남 유일의 신한국당 후보(홍성·청양)로 금배지를 달았다. 1997년 대선과정에서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겨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 원내총무 등 주요 당직을 맡았다.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 후 미국 UCLA 교환교수로 잠시 나갔다가 2006년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충남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앞둔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해 지사직을 내던졌다. 이를 계기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시련도 있었다. 2012년 갑자기 혈액암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아 6개월간 입원했고 21일 동안은 무균실에 들어가 조혈모 이식수술을 받기도 했다. 결국 완치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8개월 만에 병마를 이겨냈다.
그리고 2013년 4·24 재·보선(부여 청양)에서 80%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으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지난해 5월에는 새누리당 사상 첫 충청권 원내대표에 올랐다.
그는 40년에 걸친 공직생활과 시련 속에서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주변을 관리했다. 큰아들 혼사를 비서진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장모상을 당했을 때는 신문 부고란에 자신의 이름을 뺐다. 암 투병에다 과거 누군가 박카스라며 건넨 농약을 마신 탓에 술 한 잔도 하지 못한다.
이 후보자는 자신의 병역 의혹 해명을 위해 방사선 사진들을 50년간 자택에 보관하고 40년 전 공직생활 시작할 때의 첫 월급명세서를 지금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배우자 이백연(62) 씨와 2남.
서울=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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